역사적 인물

세비네 후작 부인(Marquise de Sévigné), 서간문학의 거장

마리 드 라뷔탕-샹탈(Marie de Rabutin-Chantal), 즉 세비네 후작 부인(Marquise de Sévigné, 1626~1696)은 서간문학으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문인이다.

젊은 과부

마리 드 라뷔탕-샹탈은 1626년 2월 5일 파리에서 샹탈 남작 셀스-베니뉴 드 라뷔탕(Celse-Bénigne de Rabutin)과 마리 드 쿨랑주(Marie de Coulanges)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한 살이던 1627년 아버지를 잃었고, 1633년에는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나 외조부마저 1636년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외삼촌 필리프 드 쿨랑주(Philippe de Coulanges)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귀여움을 받으며 성장한 그녀는 또 다른 외삼촌 크리스토프 드 쿨랑주(Christophe de Coulanges) 덕분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를 익힐 정도로 조예가 깊었다.

1644년, 18세의 나이에 그녀는 앙리 드 세비네 후작(Henri de Sévigné)과 결혼하여 딸 프랑수아즈-마르그리트(Françoise-Marguerite)와 아들 샤를(Charles)을 두었다. 그러나 1651년, 남편 앙리가 다른 여인과 얽힌 결투 끝에 목숨을 잃으면서 마리는 불과 25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녀는 재혼 대신 자녀 교육과 궁정의 사교생활에 헌신하는 삶을 선택했다.

25년간의 서신 왕래

1669년, 딸 프랑수아즈-마르그리트가 그리냥 백작(Comte de Grignan)과 결혼했다. 루이 14세는 그를 프로방스의 중장(lieutenant-general)으로 임명했고, 프랑수아즈-마르그리트는 남편을 따라 멀리 프로방스로 떠나야 했다. 딸이 떠난 지 이틀 만에 마리는 첫 번째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무려 25년에 걸친 방대한 서신의 시작이었다.

매주 2~3통씩 꾸준히 보낸 편지는 총 1,000통이 넘었다. 궁정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재치와 유머를 발휘해 파리 사교계를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묘사했다. 동시에 가족과 가족애에 관한 진솔하고 친밀한 이야기들도 편지에 녹여냈다. 주된 수신자는 물론 딸이었지만, 아들 샤를과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라파예트 부인(Madame de La Fayette) 같은 친우들에게도 많은 편지를 보냈다.

1696년 4월 17일, 몸져누운 딸을 간호하러 그리냥에 갔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1726년 그녀의 편지 28편이 모음집으로 처음 출판되었고, 이후 딸 프랑수아즈-마르그리트의 딸, 즉 손녀가 선별하고 다듬은 판본들이 잇달아 세상에 나왔다.

세비네 후작 부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서간문학이라는 장르의 기틀을 마련한 토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