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마리 드 구르네, 몽테뉴의 『에세이』를 손질한 근대 프랑스의 프리랜서 작가

근대 프랑스의 여성 문인 마리 드 구르네(Marie de Gournay)(1565~1645)는 당대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몽테뉴의 『에세이』 교정 작업에 참여했고, 동시에 자신만의 저술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독학으로 쌓은 학문

마리 드 구르네, 몽테뉴의 『에세이』를 손질한 근대 프랑스의 프리랜서 작가1565년 10월 6일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난 마리 르 자르(Marie Le Jars)는 잔 드 아크빌(Jeanne de Hacqueville)과 기욤 르 자르(Guillaume Le Jars) 사이의 여섯 자녀 중 맏이였습니다. '구르네'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피카르디 지방 구르네쉬로롱드(Gournay-sur-Aronde)의 성과 영지를 매입하면서 얻게 된 것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인 1578년경의 일이었습니다.

마리는 당시 좋은 집안 딸에게 주어지던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전과 번역본을 대조해 가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으로 익혔고, 과학·문학·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스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결혼을 내려놓고 붓으로 생계를 꾸리는 삶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몽테뉴와의 만남, 『에세이』

열여덟 살 무렵,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의 『에세이(Essais)』 초판을 접한 마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언젠가 저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1588년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 머물던 중, 그녀는 몽테뉴에게 만남을 청하는 쪽지를 보냈습니다. 자신보다 서른두 살 위의 이 문장가는 흔쾌히 응했고, 두 사람은 다음 날 만났습니다.

이후 몽테뉴는 구르네 성에 몇 주간 머물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연정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새 판 『에세이』를 놓고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고, 몽테뉴는 마리에게 자신의 수정 사항을 받아쓰게 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말년까지 서신 왕래를 이어갔습니다.

1591년 어머니 잔 드 아크빌이 세상을 떠나자 마리는 성을 남동생 샤를에게 넘기고 파리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1592년 몽테뉴가 사망하자, 그의 미망인은 주석이 달린 『에세이』 필사본을 마리에게 보내며 출판을 부탁했습니다. 마리는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서문을 집필하여 1595년 이 『에세이』를 유고 출판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저술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여성과 숙녀들의 불평』

수도 파리에서 마리 드 구르네는 학자들과 교류하며 궁정에 후원자 네트워크를 쌓았고,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앙리 4세, 마리 드 메디시스, 루이 13세에게 자신의 붓을 바쳤습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생계를 꾸렸으며, 왕실 연금 덕분에 시, 번역(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 등), 각색, 평론 등 다양한 작품을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그녀는 1622년 『남녀 평등론(Égalité des hommes et des femmes)』, 1626년 『여성과 숙녀들의 불평(Grief des dames)』을 잇달아 출판하며 남녀 간 절대적 평등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많은 독립적인 여성들이 그러했듯, 그녀 역시 개인적으로나 작품 면에서나 끊임없는 험담과 비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마리 드 구르네는 1645년 7월 13일 파리에서 79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