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무휼공 장 두 퍼르(1371~1419), 부르고뉴 공작의 야망과 최후

무휼공 장 두 퍼르(1371~1419), 부르고뉴 공작의 야망과 최후

십자군에서 얻은 이름, '두려움 없는 자'

장 두 퍼르(Jean sans Peur, 1371~1419)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필리프 르 보드(Philippe le Bold)의 아들이다. 그는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Sigismund)가 오스만 튀르크에 맞서 일으킨 니코폴리스 십자군(1396년)에 참전하여 눈부신 용맹을 떨쳤고, 이 전공으로 '상 푀르(sans Peur)', 즉 '두려움을 모르는 자'라는 유명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재정 위기 속의 정치적 부상

1398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40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부르고뉴 가문의 금고는 이미 바닥나 있었고, 왕실의 재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그는 교묘한 선동 정치를 구사하며 파리의 부르주아와 시민 계층의 호감을 적극적으로 끌어모으는 전략을 택했다.

오를레앙파와의 피비린내 나는 대립

왕국의 권력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을 경계한 그는 1405년 파리를 무력으로 위협했고, 1407년에는 정적이자 국왕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를 암살하게 만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오를레앙파와 첨예하게 충돌했는데, 당시 오를레앙파의 실질적 지도자는 아르마냐크 백작 베르나르 7세(Bernard VII d'Armagnac)였다. 한편 그는 카보슈(Cabochiens) 반란에 깊이 개입하는 바람에 온건파마저 등을 돌리게 되었고, 결국 1413년 파리를 급히 떠나야 했다. 수도는 곧 아르마냐크파의 반격에 넘어간다.

몽트로에서의 비극적인 최후

1418년 그는 무력으로 수도 파리를 다시 장악했고, 백년전쟁의 강적 잉글랜드에 맞서기 위해 왕세자 도팽(Dauphin)과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러나 1419년 몽트로(Montereau)에서 열린 도팽과의 회담 자리에서 그는 아르마냐크파 소속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부르고뉴파를 잉글랜드 진영으로 내몰았다. 후계자인 아들 필리프 르 보노('선량공')는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으며 백년전쟁의 흐름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