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독립의 영웅으로 불리는 사니테 벨레르(Sanité Belair, 1781~1802)는 프랑스의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파견된 르클레르 원정군에 무장 항쟁을 벌이며 아이티 혁명에서 두각을 나타낸 여성 지도자입니다.
투생 루베르튀르와 함께한 시절
사니테 벨레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수잔 벨레르(Suzanne Belair)는 1781년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의 베레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초기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노예 신분이 아닌 자유민으로 태어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1795년, 그녀는 아이티 혁명의 거목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 휘하의 장교였던 샤를 벨레르(Charles Belair)와 결혼했습니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산토도밍고 총독으로 임명된 뒤 섬 전역에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고, 영국군을 격파하고 스페인령 동부 지역마저 점령하여 산토도밍고 총사령관(Captain-General)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사니테와 샤를의 무장 봉기
투생 루베르튀르가 너무 강력한 인물이 되었다고 판단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의 통치권을 회복하고 1794년에 폐지되었던 노예제를 되살리기 위해 군사 원정대를 섬으로 파견했습니다. 이 임무를 맡은 르클레르(Leclerc) 장군은 1802년 2월 생도맹그에 도착했고, 투생 루베르튀르는 세 달 후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니테의 주도로 그녀와 남편 샤를은 같은 해 8월, 베레트 마을을 둘러싼 산악 지대에서 다시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부부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르클레르에게 고용되어 있던 병력 일부까지 규합해 고지대에 진출했고, 그곳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며 저항의 기세를 높였습니다.
순국과 아이티 독립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르클레르는 당시 총사령관과 함께 항복했던 투생 루베르튀르의 전직 부관인 장자크 드살린(Jean-Jacques Dessalines)을 파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반군에 합류할 의도로 출발했던 드살린은 이 봉기가 시기상조이고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반군을 격파하고 숲속으로 몰아붙였으며, 마침내 사니테를 포획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샤를은 스스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사니테와 샤를은 만장일치로 총살형을 선고받았고, 형은 1802년 10월에 집행되었습니다. 특히 사니테는 처형 직전 눈가리개를 쓰기를 거부하며 두려움 없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드살린은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라는 감탄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1803년 프랑스군을 최종적으로 격파한 드살린은 1804년 1월 1일 아이티의 독립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목숨을 바쳐 싸운 사니테 벨레르는 오늘날 아이티 독립을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여성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