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은 미국 출신의 무용가로, 그리스 고대 예술과 정신성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유럽 근대무용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무용 경력의 시작
이사도라는 1877년 5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메리 도라 그레이와 찰스 던컨 사이의 넷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세 살 되던 해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 메리 도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로 이주하여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사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사도라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독립적인 성격 탓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학교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여동생과 함께 동네 아이들에게 무용 레슨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가르침 과정에서 그녀 특유의 독창성과 상상력이 춤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1895년에는 뉴욕에서 어거스틴 데일리(Augustin Daly) 극단을 통해 잠시 연극 무대에 섰지만, 이 경험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망으로 끝났습니다. 1899년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무용수로 활동하였으며, 대영박물관에서 처음 접한 그리스 고대 문명은 평생 그녀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00년에는 파리로 이주하여 루브르 박물관과 당시 열리던 만국박람회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전통 발레와의 결별
파리에서 빠르게 명성을 쌓은 이사도라는 1902년 유럽 순회 공연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전통 발레의 엄격한 형식과 규범을 과감히 거부하고, 대신 감정·신체·즉흥성에서 영감을 얻어 춤을 추었습니다. 튀튀와 포인트 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무대에 서면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구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예술 철학에 공감했고, 1904년에는 첫 번째 무용학교를 열었습니다. 이후 공연과 교육은 그녀 예술 인생의 두 개의 큰 축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딸 디어드러(Deirdre)를, 1910년에는 아들 패트릭(Patrick)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비극적으로도 두 아이는 1913년 4월 19일 자동차 사고로 세느강에 빠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술계에 남긴 영향과 말년
큰 인기를 누린 이사도라는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1913년에는 그녀의 초상이 샹젤리제 극장(Théâtre des Champs-Élysées)의 부조에 새겨졌으며, 같은 해 뫼동(Meudon)에 두 번째 무용학교를 설립했습니다.
1922년에는 새로 탄생한 소련을 지지하고자 잠시 모스크바로 이주해 또 하나의 무용학교를 세운 뒤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해 러시아의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Sergei Yesenin)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알코올 문제와 격렬한 성격 탓에 부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혼 생활은 다음 해에 끝을 맺었습니다. 양성애자였던 이사도라는 시인 메르세데스 데 아코스타(Mercedes de Acosta), 작가 나탈리 클리퍼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와도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7년 9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이사도라 던컨은 참담한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목에 걸쳤던 긴 스카프가 달리던 자동차 바퀴 살에 감기면서 목이 졸린 것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자들은 그녀의 작품과 무용 교육 정신을 이어받아 그 유산을 계승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