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7. 시바지, 무굴 제국 최대 항구 수라트를 털다

7. 시바지, 무굴 제국 최대 항구 수라트를 털다

샤이스타 칸 원정에서 막대한 재물을 잃은 시바지는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굴 제국 영토 약탈 계획을 세웠다. 당시 수라트는 무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자 인도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세계 각지의 상선이 이 항구를 오갔고, 무슬림 순례자들도 메카로 떠나기 위해 이곳을 이용했다. 무굴 황제는 이 항구에서 매년 수천만 루피에 달하는 세수를 거두었고, 이 막대한 자금으로 제국 전역의 군대를 운영했다. 당시 수라트에는 수천만 루피 상당의 재산을 쌓아 올린 부호가 20~25명에 이르렀다. 시바지는 수라트 약탈을 결심했다.

정예병 4,000명, 몰래 집결하다

수라트로 가려면 무굴이 대규모 주둔군을 둔 부르한푸르를 지나야 했다. 시바지는 군에서 엄선한 4,000명의 정예병사를 소규모 부대로 나눠 부르한푸르를 우회시키고, 수라트에서 29km 떨어진 간데비에 집결하도록 명령했다. 시바지 자신도 1664년 1월 1일 수라트를 향해 출발했고, 1월 6일 각 부대는 간데비에서 하나로 합류했다.

부정 총독 이나야트 칸과 시바지의 경고장

수라트의 무굴 총독 이나야트 칸은 부정한 인물이었다. 그는 황제로부터 수라트 방어를 위해 지급받은 병력 중 극히 일부만 유지하고 나머지 급여는 모두 제 주머니에 넣었다. 게다가 수라트에는 성벽조차 없었다. 수라트의 약탈은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시바지는 이나야트 칸과 수라트의 유력자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나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뜻이 없다. 그러나 황제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강요했고 내 자금을 몰수했다. 내 집 랄마할마저 빼앗겨 문전박대하며 떠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손실은 황제의 비호 아래 장사하는 상인들과 국고가 배상해야 마땅하다. 평화롭게 돈을 내놓거나, 혹은 가혹한 조치를 각오하라." 시바지가 요구한 것은 부유한 상인 20~25명이 자진해 총 500만 루피를 기부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결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 아니었다.

숨어버린 총독, 무관심한 상인들

서신을 받은 무굴 수베다르(총독)는 시바지에게 강대한 무굴 제국과 적대하지 말라고 권하는 답신만 보낸 뒤, 정작 자신은 요새에 숨어버렸다. 수라트의 상인들은 무굴을 믿고 집을 떠나지 않았다. 한편 수라트에 거주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은 시바지의 위력을 잘 알고 있어 상관(商館)에 철저한 경비를 갖췄다. 영국인들은 기독교 신부를 시바지에게 보내 가난한 기독교 공동체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탄원했고, 시바지는 가난한 이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어차피 시바지는 영국인들과 얽힐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상업 물품만 있을 뿐, 시바지가 노리는 금이나 은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검 습격 사건, 그리고 본격 약탈

첫날 아무 상인도 찾아오지 않자 시바지는 병사들에게 수라트 시내 상인들의 집을 약탈하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시내로 들어가 상인들의 재물을 거두어 시바지의 천막에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총독 이나야트 칸은 병사 한 명을 통해 가짜 화해 제의를 보냈다. 이 병사는 기밀 메시지를 전하겠다며 시바지에게 접근해 갑자기 품에서 단검을 꺼내 그의 몸을 찌르려 했다. 그러나 시바지의 호위병이 즉시 반응해 병사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 사건 이후 마라타군은 더욱 강경해졌다. 병사들은 집과 상점의 문을 부수고 금고와 선반을 털었고, 부유한 상인들의 집은 땅을 파서까지 재물을 찾아냈다. 일부 동네는 불태워졌다. 시바지의 손에 들어온 전리품은 약 2천만 루피에 달했고, 수라트는 완전히 황폐해졌다. 무굴 신민을 구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나야트 칸의 병사들은 요새 성벽 위에서 포탄을 쏟아부었고, 이로 인해 수라트 시내 여러 곳에서 불이 일어났다.

철수, 그리고 적마저 칭찬한 품격

그 사이 시바지는 무굴 대군이 수라트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약탈품 중 비싼 옷감과 그릇 등을 수라트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금은과 화폐만 챙겨 1월 10일 수라트를 갑자기 떠났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아 상인들의 이탈은 계속되었다. 시바지가 떠난 뒤에야 무굴군이 수라트에 도착했다. 한때 세계 각지에서 자랑스럽게 회자되던 도시 수라트에 남은 것은 텅 빈 폐허뿐이었다.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시바지가 수라트로 진군할 무렵, 아라비아의 말 상인들이 말을 팔러 수라트에 오고 있었다. 그들은 시바지가 군대를 이끌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말을 끌고 그에게 갔다. 시바지는 말들을 거두고 상인들을 포로로 삼았지만, 약탈품과 함께 수라트를 떠날 때 말값을 지불하고 상인들을 풀어주었다. 시바지의 이러한 품격은 적들마저 그를 칭찬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