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옌옌(Xiao Yanyan, 蕭燕燕), 일명 샤오추(Xiao Chuo) 또는 승천태후(承天太后, 953~1009)는 요(遼)나라의 거란족 황후였다. 그녀는 군 지도자로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평화 협상까지 주도한 인물이다.
요나라

샤오옌옌은 10세기 초부터 몽골, 중국 북부, 러시아 동부 일부를 지배해 온 거란 제국에서 953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몽골족과 퉁구스족의 이웃 민족인 거란족 출신으로, 이들은 중국 사학에서 요나라로 알려진 거란 제국을 건국했다. 제국의 영토는 주로 몽골 초원에 걸쳐 있었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이었다.
샤오옌옌은 요나라 제4대 황제 목종(Muzong)의 통치 시기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황실 후비와 정무에 관여하는 관료들을 배출해 왔다. 옌옌은 재상 샤오쓰원(Xiao Siwen)의 세 번째 자녀로, 아버지는 969년에 승상으로 임명된다.
당시 요나라는 960년부터 중국을 다스리며 거란에 넘어간 북방 영토인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수복하려는 송나라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968년, 옌옌이 15세였을 때 송나라는 요의 동맹국인 북한(北漢) 영토를 침공했다. 송군은 원군으로 파견된 요군을 격파하고 요의 남경인 유주(幽州, 현재의 베이징)까지 진격했지만, 끝내 함락에는 실패했다.
요 경종과의 결혼
969년, 요 목종이 암살되면서 아버지의 조카손자였던 21세의 야율현(Yelü Xian)이 요 경종(Jingzong)으로 즉위했다. 같은 해 샤오옌옌은 황후로 책봉되어 경종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셋과 아들 넷이 태어났으며, 그중 972년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야율룽쉬(Yelü Longxu)이다.
거란 귀족과 한족 엘리트 양측의 지지를 받은 경종은 정치 질서 확립에 힘썼다.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을 파면하고 한족 출신 인재를 고위직에 기용했다. 그러나 경종은 건강이 허약하여 행정, 군사 전략, 세금 등 수많은 국정을 아내에게 맡겼다. 옌옌은 뛰어난 통치 능력, 전략적 안목, 그리고 선견지명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섭정 태후
982년, 경종은 사냥에서 돌아오던 중 사망했다. 아들 야율룽쉬가 요 성종(聖宗)으로 즉위했고, 미망인이 된 샤오옌옌은 아직 열한 살이 되지 않은 아들의 섭정으로서 승천태후(承天太后)의 칭호를 받았다.
태후는 조정을 장악하고 일련의 개혁에 착수했다. 그녀는 친척들을 요직에 임명해 권력 기반을 강화했고, 세금 제도를 정비하며 농업과 상업을 보호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탕구트(Tangut) 등 인접 왕국과 민족과의 동맹을 구축하고, 송나라와의 충돌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했다.
전쟁의 지휘관
전쟁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986년, 송 태종(Taizong)은 어린 황제의 즉위를 호기로 여기고 노리던 연운십육주와 유주 방면으로 대규모 원정을 개시했다. 세 개의 군대가 서로 다른 전략 요충지로 진격해 초기에는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승천태후는 군대를 소집해 아들과 함께 전장에 나섰다. 그녀는 직접 만 명의 기병 부대를 지휘했다. 요군은 송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는데, 태후는 자신의 생일을 기해 포로들을 사면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승리가 완전히 굳어졌다. 요나라는 송의 명장 양예(Yang Ye)를 포획하고 적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침공은 저지했지만 양측의 긴장은 계속 고조되었고, 국경에서는 산발적인 충돌이 이어졌다. 1004년, 샤오옌옌과 아들 성종은 송나라를 향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51세의 태후는 여전히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요군은 송의 수도 카이펑(開封)에서 백 킬로미터 거리까지 진격했다. 승패를 가리기 어려워지자 양측은 협상에 나섰다.
협상 과정에서 승천태후는 전년도에 포로로 잡아 관직을 내렸던 송의 장군 왕계충(Wang Jizhong)을 활용했다. 이윽고 단연(澶淵)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평화 조약의 핵심 조건으로 송나라는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군비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요와 송의 황제와 황후들은 가족처럼 형제자매로 불렀으며, 송 황제는 승천태후를 고모라고 칭했다. 이 평화는 무려 20년간 지속되었다.
점차 태후는 아들에게 국정을 물려주었지만, 1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인접 여러 왕국의 사절단이 참석했으며, 송 황제는 존경의 표시로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으라고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