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이다 알 후라 빈트 알리 이븐 라시드(Sayyida al-Hurra bint Ali ibn Rashid, 1485~1542)는 모로코 테투안(Tetouan)의 여왕으로, 30년간 도시를 통치하며 포르투갈에 맞서 싸웠고 해적 활동에도 나섰던 인물입니다.
"자유로운 자"
사이이다 알 후라는 1485년경(무슬림력 890년경) 오늘날 스페인 남부에 해당하는 그라나다 왕국의 귀족 무슬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사이이다 알 후라'는 "고귀한 여인", 혹은 "그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주권자"를 뜻하는 칭호입니다. 아버지는 와타스 술탄조(Wattassides)의 왕자로, 오늘날 모로코의 셰프샤우엔(Chefchaouen)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페르디난드 2세와 이사벨라 1세가 이끄는 에스파냐의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로 그라나다 왕국이 무너지자, 그는 스페인군에 맞서 싸웠지만 끝내 가족과 함께 셰프샤우엔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이이다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성장했지만, 고향을 잃은 망명의 아픔은 평생 그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16세가 되던 해, 사이이다 알 후라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보다 30살 많은 알만드리(al-Mandri)와 결혼하여 그의 사업과 정무를 도왔습니다. 1515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모로코 북부 테투안의 총독직을 계승했고, "자유로운 자"를 의미하는 '알 후라'라는 별칭을 얻게 됩니다.
응징의 항해
그라나다 왕국 상실의 설움을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사이이다 알 후라는 오스만 제국의 전설적인 사략선장 바르바로사(Barbarossa, 아루지 레이스)와 손잡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상대로 응징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바르바로사가 동지중해를 누비는 동안, 사이이다 알 후라의 함대는 서지중해를 장악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포로 석방을 조건으로 받아낸 몸값은 막대한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인질 석방 협상은 총독 사이이다 알 후라와 직접 진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그녀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고, 1541년에는 모로코의 왕 아흐마드 알와타스(Ahmed al-Wattassi)가 직접 청혼하기에 이릅니다. 관례와 달리 왕이 신부를 맞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테투안까지 행차하여 결혼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왕에게 "결혼 후에도 자신이 계속 통치할 것임"을 보여주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사이이다 알 후라는 결혼 후에도 테투안에 머물며 통치를 이어갔지만, 이듬해인 1542년 사위에게 권좌에서 축출당하고 만니다.
재산과 권력, 영광을 한꺼번에 잃은 사이이다 알 후라의 이후 행적은, 죽음의 시기와 정황마저 역사 속 미궁 속으로 사라져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