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무정부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생애와 투쟁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은 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로, 미국 무정부주의 운동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날카로운 저술 활동과 끊임없는 사회 운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으로의 이주

1869년 6월 27일, 엠마 골드만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리투아니아 코브노(현 카우나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881년 3월 13일 알렉산드르 2세 황제가 암살된 뒤 정치적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가족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13세 때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녀는 그곳에서 혁명 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특히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시 젊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어린 골드만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5세 무렵 아버지가 강제로 결혼시키려 하자, 엠마는 이복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1886년 5월 시카고 맥코믹 공장 파업 과정에서 헤이마켓 광장에서 충돌이 일어나 경찰관 7명이 사망했고, 무정부주의자 7명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그중 4명은 1887년 11월 11일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엠마는 무정부주의 운동에 합류했습니다. 러시아 이민자와 몇 달간 결혼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후 시카고를 떠나 뉴욕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신념과 투쟁

뉴욕에서 엠마 골드만은 러시아 출신 작가이자 운동가인 알렉산더 버크먼(Alexander Berkman)을 만나 연인 관계를 맺었고, 미국 무정부주의 운동의 핵심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1892년 버크먼은 자신의 제강 공장 파업을 무장 파업파괴자를 동원해 진압한 부호 겸 산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징역 22년을 선고받았고, 실제로는 14년을 복역했습니다.

1893년에는 실업 노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반란을 선동한 죄로 1년간 수감되었습니다. 옥중에서 아동 교육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이후 이를 주요 투쟁 분야로 삼았습니다. 1901년 9월 10일에는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의 공범 혐의로 잠시 구금되기도 했으며, 1916년 2월 11일에는 피임 관련 서적을 배포한 혐의로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엠마 골드만과 알렉산더 버크먼은 반전 집회를 조직하고 전선 복무 징집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1917년 FBI 국장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엠마는 2년간 수감된 뒤 러시아로 추방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직접 목격한 그녀는 처음에는 볼셰비키를 지지했지만, 볼셰비키 정권의 정책에 빠르게 환멸을 느낍니다. 붉은 군대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가한 폭력을 보면서 자신은 자기방어 외의 상황에서 폭력 사용에 대한 생각을 다시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1936년에는 스페인 혁명을 지원하며 프랑코의 국민파에 맞서 싸웠습니다.

엠마 골드만은 1940년 5월 1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서전을 포함한 6권의 저서와 더불어 방대한 무정부주의·페미니즘 저작을 후세에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