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드 종(Andrée De Jongh, 1916~2007)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지에 갇힌 연합군 병사들을 비밀리에 탈출시킨 조직 '코메트(Comète) 네트워크'의 공동 창립자이자 지도자입니다.
예술과 의학 사이에서
앙드레 드 종은 1916년 11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을 구성하는 19개 자치구 중 하나인 스하르베이크(Schaerbeek)에서 태어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활동하다 첩보 업무에 몸담았던 영국의 영웅 에디스 캐벨(Edith Cavell)에게서 영감을 받아 의료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였던 그녀는 구급대원 양성 과정을 이수하면서 장식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리에주 주의 프랑스어권 도시 말메디(Malmédy)에 있는 소피나(Sofina) 회사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코메트 네트워크의 탄생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앙드레는 브뤼셀 적십자사에 합류하여 부상당한 연합군 병사들을 간호했습니다. 이후 저항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첫 번째 네트워크에 가담했지만, 이 조직은 곧 발각되어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프레데릭(Frédéric)과 첫 네트워크의 동료였던 아르놀드 데페(Arnold Deppé)의 도움으로, 그녀는 점령지 프랑스를 기차로 통과해 스페인까지 이어지는 탈출로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1941년 7월, 첫 번째 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영국에서 계속 싸우고자 하는 벨기에인들이 남쪽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1941년 8월, 앙드레와 아르놀드는 각각 한 무리를 인도했지만 아르놀드는 프랑스에서 체포됩니다. 스페인 빌바오에서 앙드레는 영국 영사관과 연계를 구축하여 탈출자들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이송될 수 있도록 보장했습니다. 영국 측이 그녀를 신뢰하게 되면서, 저항 세력의 지원 아래 브뤼셀과 마드리드를 잇는 '데데(Dédée) 라인'이 만들어졌고, 이 노선은 훗날 '코메트 라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해방 때까지 이 네트워크는 700명이 넘는 병사의 탈출을 성사시켰으며, 그중 118명은 앙드레가 직접 안내했습니다.
체포, 그리고 강제 수용소
1943년, 독일 군사 반첩보 기구인 게하임 펠트폴리차이(Geheime Feldpolizei) 소속 요원 자크 드수브리(Jacques Desoubrie)가 코메트 네트워크에 잠입합니다. 1943년 1월 15일, 비행사 무리를 호위하던 앙드레 드 종은 피레네 산맥 근교에서 붙잡혀 바욘, 비아리츠, 프렌 수감 시설을 차례로 거치며 수감되었습니다. 그녀는 코메트 네트워크의 창립자가 자신임을 직접 밝혔지만, 게슈타포는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1943년 7월, 그녀는 독일로 강제 이송되어 여러 감옥을 거친 뒤 라벤스브뤼크와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국제 적십자사의 개입으로 1945년 4월 22일에야 석방되었습니다. 1943년 6월에 체포된 아버지 프레데릭은 1944년 3월 28일 처형되었습니다.
전후의 삶과 영예
전쟁이 끝난 후 앙드레는 벨기에령 콩고와 카메룬에서 지냈고, 에티오피아의 한센병 환자 시설에서 일한 뒤 세네갈을 거쳐 벨기에로 돌아왔습니다. 전쟁 중의 공로로 그녀는 미국 자유 훈장(Medal of Freedom), 영국 조지 훈장(George Medal), 벨기에 전십자 훈장(Croix de guerre)을 받았습니다. 또한 프랑스 명예 훈장(Légion d'honneur)과 벨기에 레오폴 훈장(Order of Leopold)의 기사 작위에 서임되었고, 벨기에 육군 중령 계급도 부여받았습니다. 1985년에는 벨기에 귀족 작위를 받아 백작부인(Countess)이 되었습니다.
앙드레 드 종은 2007년 10월 13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