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인도 독립 운동의 선구자, 비카이지 루스톰 카마(Bhikaiji Rustom Cama)

비카이지 루스톰 카마(Bhikaiji Rustom Cama, 1861~1936)는 인도 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해외에서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최초의 여성 활동가 중 한 명입니다.

어린 시절과 결혼

비카이 소랍 파텔(Bhikai Sorab Patel)은 1861년 9월 24일 당시 영국령 인도의 중심지였던 봄베이(현 무바이)의 부유한 파르시(Parsi)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소랍지 프람지 파텔(Sorabji Framji Patel)은 변호사이자 상인으로 지역 사회의 저명한 인물이었으며, 어머니는 자이지바이 소랍지 파텔(Jaijibai Sorabji Patel)이었습니다. 알렉산드라 네이티브 걸스 잉글리시 학교(Alexandra Native Girl's English Institution)에서 교육받은 그녀는 특히 언어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1885년 8월, 그녀는 친영 성향을 지닌 채 정치 입문을 꿈꾸던 부유한 법률가 루스톰 카마(Rustom Cama)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사회 활동과 인도 홈룰 협회

인도 독립 운동의 선구자, 비카이지 루스톰 카마(Bhikaiji Rustom Cama)비카이지는 사회 활동에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1896년 10월 봄베이가 기근과 페스트(흑사병)로 몸살을 앓을 때, 그녀는 직접 환자 돌봄 팀에 합류해 헌신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 역시 페스트에 감염되었고, 1901년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런던에서 그녀는 인도인 커뮤니티에서 강렬한 민족주의 연설로 유명했던 샴지 크리슈나 바르마(Shyamji Krishna Varma)를 만났습니다. 그의 소개로 인도 국민 회의 영국 위원회 의장 다다바이 나오로지(Dadabhai Naoroji)를 알게 되었고, 그의 개인 비서로 일하게 됩니다. 1905년에는 새로운 동지들과 함께 '인도 홈룰 협회(Indian Home Rule Society)'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파리 망명과 파리 인도 협회

비카이지가 인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런던 당국은 "민족주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서에 서명해야만 귀국을 허용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녀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런던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으며, 그곳에서 '파리 인도 협회(Paris Indian Society)'를 공동 창설했습니다. 파리에서 그녀는 혁명적 민족주의 글들을 집필해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 출판하고, 이를 은밀히 인도로 반입했습니다.

인도 독립 운동의 선구자, 비카이지 루스톰 카마(Bhikaiji Rustom Cama)1907년 8월 22일, 비카이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인도에서 목격한 기근과 전염병의 참상을 고하며 조국의 독립, 평등, 인권을 호소했습니다. 연설 마지막에는 캘커타기에서 발전시켜 그녀가 직접 공동 디자인한 '인도 독립기'를 전개했는데, 이 깃발은 오늘날 인도 국기의 모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도 독립 투쟁과 더불어 비카이지는 성평등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191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성 청중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여기 이집트 인구의 절반만 대표하는 분들을 보고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집트의 아들들이여, 이집트의 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들의 어머니와 자매, 아내와 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그녀의 가장 중요한 투쟁은 역시 조국 인도의 독립이었습니다.

귀환과 마지막

1914년 프랑스가 영국과 동맹을 맺자 비카이지의 동지 대부분은 프랑스를 떠났지만, 그녀는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같은 해 펀자브 출신 병사들에게 반영 선전을 시도하다 잠시 체포되어 비시(Vichy)로 압송되어 수감되었습니다. 건강 악화로 1917년 11월 석방된 후, 전쟁이 끝나자 파리의 집으로 돌아와 1935년까지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35년 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부분 마비를 겪은 그녀는 영국 정부에 귀국을 탄원했고, 모든 민족주의 활동을 접겠다는 조건으로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1935년 11월 봄베이로 돌아온 비카이지 루스톰 카마는 9개월 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재산 전액은 여아 고아원에 기증되었습니다.

남겨진 유산

비카이지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기리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1962년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 우표를 발행했으며, 델리와 무바이 등 주요 도시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와 장소가 남아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게양된 그 깃발처럼, 그녀는 인도 독립의 역사에 불멸의 흔적을 새긴 인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