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애니 스미스 펙(Annie Smith Peck): 바지를 입고 마터호른을 오른 시대를 앞선 산악인

시대를 앞선 여성, 애니 스미스 펙

애니 스미스 펙(Annie Smith Peck, 1850~1935)은 여행과 탐험의 가치를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미국의 산악인이자 강연가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증명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는 바꿀 수 없어요"

애니 스미스 펙(Annie Smith Peck): 바지를 입고 마터호른을 오른 시대를 앞선 산악인애니 스미스 펙은 1850년 10월 19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다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조지 배첼러 펙(George Bacheler Peck)은 법률가이자 상인으로 미국 하원 의원을 지낸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앤 파워 스미스 펙(Ann Power Smith Peck)이었습니다.

애니는 프로비던스의 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교사 양성 기관인 로드아일랜드 사범학교(Rhode Island Normal School)에 들어갔습니다. 졸업 후 한동안 프로비던스 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쳤지만, 그녀의 진짜 목표는 언제나 더 공부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처럼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시 이 학교는 남학생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브라운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애니는 미시간주로 이주해 1874년까지 새기노 고등학교(Saginaw High School)에서 언어와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공부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진학을 결심합니다. 가족들은 그녀를 만류했습니다. 24살에 대학에 들어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졸업하겠다는 계획을 어리석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애니는 굴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빠들과 다른 길을 권할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요. "저는 바꿀 수 없어요. 이것은 제가 몇 년 동안 원해 온 일입니다." 결국 아버지 조지는 마음을 돌려, 오빠들의 학업을 지원했던 것처럼 딸의 공부도 지원하기로 합니다.

애니는 여학생에게 문호를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해 그리스어와 고전 언어를 전공했고, 1878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하노버와 아테네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아테네에서는 미국 고전 연구 학교(American School of Classical Studies at Athens)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바지 차림으로 오른 마터호른

1885년, 애니 스미스 펙은 산악 등반에 매력을 느껴 이탈리아, 스위스, 그리스의 여러 봉우리와 고개를 해발 약 3,000미터까지 오르며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그녀는 1881년부터 1892년까지 매사추세츠의 여자 대학인 스미스 칼리지(Smith College)에서 고고학과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했으며, 강연가로서도 점차 이름을 알렸습니다. 고고학, 등반, 여행에 관한 저술과 강연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자 1892년에는 교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동안 애니는 유럽과 미국에서 중급 산들을 꾸준히 오르다가, 1895년 알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 해발 4,478미터) 등정으로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주목받은 이유는 등반 실력만이 아니었습니다. 애니가 당시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바지를 입고 정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이 그런 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등반 소식은 언론과 여론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향한 열정

이후 애니 스미스 펙은 라틴아메리카 탐험에 나섰고, 남미와 북미 간의 평화로운 유대를 널리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지리 교육과 탐험을 지원하는 강연과 저술 활동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더 높은 봉우리들에 도전해 오리사바 화산(Pico de Orizaba, 해발 5,636미터)과 포포카테페틀 화산(Popocatépetl, 해발 5,426미터)을 올랐습니다.

1908년, 두 번의 실패 끝에 애니는 스위스 산악 가이드 두 명과 함께 페루의 후아스카란(Huascarán) 북봉(해발 6,655미터)을 처음으로 등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58세였습니다. 그녀는 이 경험을 책으로 남겼는데, 제목은 The Search for the Apex of America: High Mountain Climbing in Peru and Bolivia, including the Conquest of Huascaran, with Some Observations on the Country and People Below(《아메리카의 정점을 찾아서》)였습니다. 나이를 이유로 등반을 멈추지 않은 애니는 1911년, 61세의 나이에 페루 코로푸나 산(Coropuna, 해발 6,425미터)의 한 봉우리마저 정복했습니다.

애니는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열렬한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잔다르크 참정권 동맹(Joan of Arc Suffrage League) 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1929년부터 1930년까지 남미 일대를 비행기로 순회하며 사람들에게 여행과 탐험의 즐거움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1935년에는 세계 일주에 나섰지만 그리스에서 병을 얻어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니 스미스 펙은 1935년 7월 18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학 문호가 닫혀 있던 시절에도 꿈을 굽히지 않았고,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산악 세계에서 최고봉을 개척한 그녀는 시대를 한참 앞서간 개척자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