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노예제의 증인 메리 프린스, 영국 노예제 폐지를 이끈 최초의 자서전

노예로 태어난 메리 프린스(Mary Prince, 1788~?)는 영국에서 출판된 책을 통해 노예제를 증언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녀의 자서전적 증언은 영국 노예제 폐지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예제의 증인 메리 프린스, 영국 노예제 폐지를 이끈 최초의 자서전

주인들의 폭력

노예의 딸로 태어난 메리 프린스는 1788년 버뮤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무꾼, 어머니는 하녀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주인에게 소유되어 있었습니다. 메리는 어머니와 세 형제, 두 자매와 함께 다렐 선장(Captain Darrell)의 집에서 자랐으며, 그 집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메리와 여동생들은 같은 날 저마다 다른 주인에게 팔려나갔습니다. 메리는 존 잉엄 선장(Captain John Ingham) 부부에게 팔렸는데, 이들은 곧 가혹하고 잔인한 주인임을 드러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노예들이 매질을 당했고, 메리 역시 다친 끝에 도망쳤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숨겨 상처를 치료해주었지만, 아버지는 결국 메리를 찾아내 주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1806년, 잉엄은 메리를 서인도제도의 염전 소유주에게 되팔았습니다. 가혹한 주인에게서 벗어난다고 안도했지만, 메리를 기다리던 것은 극도로 힘들고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네 해 후 그녀는 주인을 따라 버뮤다로 돌아와 주인의 딸을 위해 일했습니다.

1815년, 메리는 다시 팔려 새 주인 존 애덤스 우드(John Adams Wood)의 가정 노예가 되어 앤티가(Antigua)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집안일과 빨래를 도맡았습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울 때에는 심부름을 하거나 커피와 얌(토란류 작물)을 팔아 몇 푼의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1817년, 메리는 개신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구에 들어가 글을 배우며 수업을 받았습니다. 1826년에는 목수이자 전직 노예였던 다니엘 제임스(Daniel James)와 결혼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노동으로 번 돈으로 자유를 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주인들의 분노를 샀고, 그들은 “우리 집에 자유민인 흑인을 둘 수 없다”며 메리를 매질로 응징했습니다.

런던에서의 메리

1828년, 우드 부부가 런던으로 떠날 때 메리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함께 갔습니다. 영국 본토에서는 노예제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에, 메리는 영국 땅에 닿는 순간 명목상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러나 런던에서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었고, 앤티가에 남은 남편을 만나러 돌아가면 다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드 부부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존 우드는 메리에게 떠나도 좋다는 편지를 주면서도 아무도 그녀를 고용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메리는 개신교회에 몸을 의탁했고, 곧 노예제폐지협회(Anti-Slavery Society) 사무총장이자 작가인 토머스 프링글(Thomas Pringle)이 그녀를 때때로 고용하게 됩니다.

프링글은 존 우드에게 메리의 정식 해방 문서를 요청했지만 우드는 거절했고, 메리가 남편에게 돌아가는 길은 막혀버렸습니다. 프링글은 메리에게 자신의 노예 경험을 직접 증언해 달라고 권유했고, 그 이야기는 작가 수잔나 스트릭랜드(Susanna Strickland)에 의해 받아 적혔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의 규범에 맞춰 증언이 다듬어지긴 했지만, 메리는 자신이 겪은 비참한 현실과 옛 주인들의 잔혹함을 숨김없이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 그녀는 자유의 의미를 이야기했고, 노예제 철폐를 강력히 호소했습니다.

1831년, 이 증언은 『메리 프린스의 역사(The History of Mary Princ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형식의 최초의 직접 증언이었던 이 책은 출간 즉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첫해에만 세 차례나 인쇄될 만큼 폭넓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폐지론이 힘을 얻어가던 영국 여론에 그 영향은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책 출간의 성공 이후 메리 프린스의 삶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1833년까지 영국에 머문 것으로 보이며, 그해 제정된 「1833년 노예제 폐지법(Slavery Abolition Act 1833)」으로 영국 식민지의 노예제가 공식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소원대로 앤티가로 돌아가 남편과 재회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