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카리나 부불리나(Laskarina Bouboulina, 1771~1825)는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활약한 그리스의 여성 영웅이다. 부유한 선주였던 그녀는 단순히 후원자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함대를 지휘하며 전장에 나섰던 인물로,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감옥에서 태어난 소녀
스타브리아노스 피노티시 선장과 스케보 피노티시의 딸인 라스카리나는 1771년 5월 11일, 어머니가 콘스탄티노플의 감옥에 수감된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1769년부터 1770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선 오를로프 혁명에 참여한 혐의로 수감되어 있었다.
스타브리아노스 피노티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라스카리나는 어머니가 드미트리오스 라자루 오를로프와 재혼하기 전까지 한동안 히드라 섬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이후 가족은 스페체스 섬에 정착했으며,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으로 여덟 명의 자녀가 더 태어났다.
독립전쟁과 함대 사령관
라스카리나는 열일곱 살에 D. 야누자스와 첫 결혼을 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남편이 1797년 사망하자 그녀는 4년 뒤 부유한 사업가 D. 부불리스와 재혼했다. 1811년 프랑스 선박과의 충돌 속에서 두 번째 남편마저 사망하자, 라스카리나는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았고, 특히 대형 전함인 아가멤논(Agamemnon)을 포함해 네 척의 배를 건조했다.
1816년에는 남편이 러시아 편에서 터키와 싸웠던 일이 문제가 되어 오스만 제국이 그녀의 재산 몰수를 시도했으나, 그녀는 러시아 대사와 오스만 술탄의 모후의 보호를 받아 위기를 넘겼다.
이 무렵 라스카리나가 오스만 점령에 맞선 혁명을 준비하던 비밀결사 필리키 에테리아(Philiki Etairia)에 가입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를 입증할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꾸준히 군함을 건조했고, 아가멤논호는 1820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그녀는 부대를 조직하고 병사들을 고용하며 장비와 무기를 마련하는 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다.
1821년 3월 13일, 독립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12일 전, 라스카리나는 자신의 배 돛대에 최초의 혁명기를 게양했다. 같은 해 4월 3일, 스페체스 주민들이 히드라 섬과 프사라 섬과 함께 봉기하자 그녀는 300척 규모의 함대와 합류해 싸웠다. 나프플리온에서 다른 함선들과 함께 해상 봉쇄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그녀의 아들은 전투 중 목숨을 잃었다.
장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라스카리나는 다른 장군들과 대등한 지휘관으로 인정받아 모네바시아와 필로스 전투에 참전했으며, 1821년 9월 11일 트리폴리스 함락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곳에서 그리스의 명장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Theódoros Kolokotrónis)를 만났고, 두 사람은 자녀들인 엘레니 부불리와 파노스 콜로코트로니스의 혼약을 맺으며 가까운 관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1822년 12월, 파노스가 지휘하던 나프플리온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는 여러 비방과 고발에 시달린 끝에 결국 그 도시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비극적 최후와 유산
라스카리나 부불리나는 1825년 5월 22일, 가족 간의 보복 분쟁인 벤데타(vendetta) 소동 중에 비극적으로 살해당했다. 그녀가 남긴 아가멤논호는 이후 그리스 국가에 매각되었고, 프랑스 해군의 함선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오늘날 스페체스 섬에는 그녀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꾸며져 그녀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 그리스 독립전쟁의 진정한 여주인공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