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보팔 번왕국을 다스린 여성 통치자, 술탄 샤 자한 베굼

인도 보팔 번왕국의 나와브(Nawab)였던 샤 자한 베굼(Shahjahan Begum, 1838~1901)은 유능하게 국정을 운영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위대하고 인기 있는 통치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여섯 살에 즉위한 군주

보팔 번왕국을 다스린 여성 통치자, 술탄 샤 자한 베굼

샤 자한 베굼은 1838년 7월 29일, 인도 중부 보팔 번왕국의 이슬람나가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보팔의 나와브(인도 무슬림 통치자) 자한기르 모하메드 칸과 그의 아내 시칸다르 베굼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하게 생존한 자녀였습니다. '베굼'은 왕비나 여성 귀족에게 붙여지는 존칭입니다. 그녀는 1819년 남편이 사망하자 섭정 자리에 올라 18년간 권력을 쥐었던 조모 쿠드시아 베굼의 혈통을 이었습니다.

어머니처럼 샤 자한 역시 어린 시절부터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불과 여섯 살에 왕좌에 올랐습니다. 스스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통치는 어머니가 섭정으로 맡았습니다. 그러나 1860년 영국은 시칸다르 베굼을 보팔의 통치자로 공식 인정했고, 샤 자한은 왕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186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서야 비로소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1855년에 결혼했으나 이미 남편을 잃은 젊은 미망인이 된 그녀는 '술탄 샤 자한 베굼 사히바(Sultan Shah Jahan Begum Sahiba)'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여왕

샤 자한 베굼은 즉위 후 일련의 행정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세금 제도를 개선하고, 군대와 장비를 현대화했으며, 병사들과 일부 공무원의 급여를 인상했습니다. 농업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둑과 인공 호수를 건설해 필요할 때 빗물을 저장해 두도록 했습니다. 전염병, 특히 두 차례의 페스트 유행에 직면하자 인구 조사를 실시해 번왕국의 인구 구조에 맞춰 정책을 조정했습니다. 아울러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 아편 재배를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유능하고 인기 있는 군주로 평가받은 샤 자한은 지적인 면모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우르두어로 집필된 여러 저작이 그녀에게서 나왔는데, 자서전과 즉위 초기의 통치기를 담은 저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1871년에는 시디크 하산 칸과 재혼했는데, 인도 전통에서 미망인의 재혼이 좋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혼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혼식에서는 남편이 어떠한 집행 권한도 갖지 않으며 샤 자한이 계속 명목상의 군주로 남는다는 점이 명시되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심을 지닌 통치자이자 건축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인 타즈울마사지드(Taj-ul-Masajid)의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스크는 무려 1971년에야 완공되었습니다. 또한 보팔에 타지마할 궁전을 지었는데, 이는 아그라의 유명한 타지마할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영국 내 한 모스크와 인도 알리가르 무슬림 대학의 건립에도 거액을 기부하는 등 폭넓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통치의 마무리

1901년, 샤 자한 베굼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며 공개 메시지를 발표해, 만약 자신이 백성 중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다면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백성들의 깊은 감동과 슬픔을 불러일으켰고, 그녀가 여전히 사랑받는 군주였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술탄 샤 자한 베굼은 1901년 6월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