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 하그나우어(Yvonne Hagnauer, 1898~1985)는 1941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유대인 아이들과 전쟁 고아들을 보호한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페다고그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야드바셈으로부터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으로 지정된 인물입니다.
헌신적인 교사
이본 외제니 폴린 에븐(Eugénie Pauline Even)은 1898년 9월 9일 프랑스 일드프랑스 지역 파비용수부아에서 브르타뉴 계통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성적으로 공부하여 '역사·문학·영어' 일반교육 자격증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디플로마를 취득했습니다.
페미니스트이자 적극적인 사회운동가였던 그녀는 파리 Sup de Co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으며, 전국교원노조(SNI)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1925년에는 역시 교사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로저 하그나우어(Roger Hagnauer)와 결혼했습니다. 새로운 교육 방법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그녀는 1937년 국제교육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Education) 조직 준비에도 참여했습니다.
세브르의 집(Maison de Sèvres)
1938년 이본 하그나우어는 여성평화연맹(Ligue des femmes pour la paix)을 공동 창립했습니다. 1939년에는 남편과 함께 '즉각적인 평화' 선언문에 서명했고, 이로 인해 달라디에 정부로부터 공교육 기관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두 사람은 3년 후에야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운동에 몸을 바친 이본은 1941년 6월 국가구호기구(Secours National)의 요청으로 여름 캠프를 운영하게 되었고, 이후 '세브르의 집(Maison de Sèvres)'이라는 아동 보호 시설을 맡게 되었습니다.
세브르의 집은 처음에는 파리 지역의 빈곤하거나 버려진 영양실조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레지스탕스 네트워크와 하그나우어 부부의 교사 동료들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 아이들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본과 로저는 아이들에게 가짜 신분증을 직접 만들어주거나 구해주었으며, 민간 및 종교 당국의 협조를 얻어 아이들을 보호했습니다. 세브르의 집은 유대인, 프리메이슨, 레지스탕스 대원 등 어른들마저 숨겨주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의 세브르의 집
관계자들의 방문으로 세브르의 집 사람들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체포된 이가 없었습니다. 간호사의 밀고로 유대인으로 신고된 로저 하그나우어는 간신히 도망쳐 해방될 때까지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마주했고, 세브르의 집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전쟁 고아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가족에게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이본 하그나우어는 다양한 교육 사상을 종합한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안해냈습니다. 그 핵심은 아이들의 흥미를 깨워주고, 책임감과 창의성, 그리고 노력하는 기쁨을 키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본 하그나우어는 1974년 '열방의 의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녀는 1985년 11월 1일 프랑스 뫼동(Meudon)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 자료
이본 하그나우어 전기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
세브르의 집(Maison de Sèv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