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 바이유(Madeleine Weill), 훗날의 마들렌 브라운(Madeleine Braun, 1907~1980)은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프랑스 국회(국민의회) 역사상 최초로 부의장에 선출된 인물입니다.
평화 운동과 반파시즘 활동
화가 가브리엘 히르슈(Gabrielle Hirsch)와 회사 임원 알베르 바이유(Albert Weill)의 딸인 마들렌은 1907년 6월 25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르주아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빌리에 학교(École Villiers)에서 수학한 뒤 파리 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했습니다. 1930년 7월 8일에는 파리 유리공사(Société parisienne de verrerie)의 경영 총괄 장 브라운(Jean Braun)과 결혼했습니다. 시아버지 살로몬 브라운(Salomon Braun)이 운영하던 병원의 사회복지 업무를 맡으면서 그녀는 사회적 불평등의 현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활동가로서 그녀는 1933년 창설된 평화·반파시즘 운동 '암스테르담-플레옐(Amsterdam-Pleyel)'에 참여해 지도위원회 위원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내전 기간에는 빅토르 바슈(Victor Basch)와 폴 랑주뱅(Paul Langevin)을 도와 '공화파 스페인 원조 국제조정정보위원회' 활동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프랑스 공산당과 가까워졌습니다.
국회 최초의 여성 부의장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들렌 브라운은 남편을 따라 자유지대로 피신했고, 레지스탕스 조직인 '전국전선(Front National)'에 합류하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기관지 『애국자(Le Patriote)』의 편집자로서 저항 세력 간 연락 임무를 수행하며 큰 위험을 무릅썼고, 이러한 공로로 종전 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기사) 등급과 야자수장이 달린 무공십자훈장(Croix de guerre) 등 수많은 포장을 받았습니다.
1944년 11월, 전국전선은 그녀를 임시 자문 의회(Provisional Consultative Assembly) 대표단으로 파견했으며, 특히 외교 분야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이민자 신분 문제, 강제 추방자 가족에 대한 구호, 외국인 노동력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45년 10월 21일에는 프랑스 공산당 명부로 센(Seine) 지역구 제1제헌의회 의원에 선출되었고, 1946년 6월 2일 제2제헌의회 의원으로 재선되었습니다.
1946년 6월 14일, 마들렌 브라운은 국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재선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공직과 자유직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비롯해 다양한 입법 활동을 추진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로 피신한 스페인 공화파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프랑코 장군이 파견한 동생 니콜라스 프랑코(Nicolas Franco)의 프랑스 체류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언론의 권리 옹호에도 앞장섰습니다.
1951년에는 재선에 출마하지 않고 출판계로 진출하여, 시인 루이 아라곤(Louis Aragon)과 함께 프랑스 통합출판사(Éditeurs Français Réunis)의 공동 대표를 맡았습니다.
마들렌 브라운은 1980년 1월 22일 생클루(Saint-Cloud)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