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도적들의 여왕' 풀란 데비(Phoolan Devi): 카스트의 벽을 넘은 인도의 전설

풀란 데비(Phoolan Devi, 1963~2001)는 '도적들의 여왕(Queen of Bandits)'이라 불리며, 인도 무장 강도단의 두목으로 활동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인물입니다.

[주의: 성폭력 및 폭력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적들의 여왕  풀란 데비(Phoolan Devi): 카스트의 벽을 넘은 인도의 전설

열한 살의 신부

풀란 데비는 1963년 8월 10일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물 데비(Mool Devi)와 데비 딘(Devi Din) 부부의 넷째이자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말라(mallah) 계급은 어부와 뱃사람들이 속한 카스트로, 인도 사회에서 낮은 계층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형제자매 가운데 성인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녀와 한 명의 언니뿐이었습니다.

풀란이 열한 살이 되던 해, 친조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폭력적인 숙부가 가문의 실권을 쥐게 됩니다. 풀란은 언니와 함께 부모의 땅을 강탈한 숙부와 그의 아들 마야딘(Mayadin)에게 맞섰고, 분노한 숙부는 열한 살의 풀란을 서른세 살인 사촌에게 시집보냅니다. 당시 관습상 어린아이가 시집가는 일은 드물었지만, 풀란은 남편의 집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구타와 성폭행, 과중한 집안일에 시달렸습니다. 몇 번이나 도망쳤지만 부모는 그녀를 남편에게 되돌려 보냈고, 결국 남편 스스로 장인에게 아내를 돌려달라고 요청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이 남편을 떠나는 것은 중대한 불명예로 여겨졌고, 풀란은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수호자

부모 곁으로 돌아온 풀란은 부모의 땅을 빼앗은 마야딘을 법정에 세우려 했지만 패소했고, 오히려 절도죄로 고발당해 감옥에 수감되어 그곳에서도 학대를 겪었습니다. 열다섯여섯 살 무렵 석방된 그녀는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1979년, 풀란은 다코이트(dacoit)라 불리는 무장 강도단의 손에 넘어갑니다. 다코이트는 주로 토지 없는 농민과 천민(untouchable)들로 이루어진 무리였습니다. 강도단의 두목이 그녀를 폭력적으로 덮치자, 같은 말라 출신의 강도 비크람(Vikram)이 두목을 죽이고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비크람은 풀란의 연인이 되어 그녀에게 총 사용법과 탁쿠르(thakur) 지주들을 습격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몇 주 뒤 강도단은 풀란의 전 남편이 사는 마을을 습격했고, 풀란은 직접 칼로 남편을 찔러 죽음의 문턱에 내버려두면서 "늙은 남자들은 어린 소녀와 결혼하지 말라"는 쪽지를 남겼습니다. 강도단은 지주들을 납치하고 하위 카스트 여성을 성폭행한 남자들을 응징했으며, 때때로 기차를 습격하기도 했습니다. 무리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풀란은 억압받는 자들의 수호자로서 주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베마이 학살

탁쿠르 출신 다코이트인 슈리 람(Shri Ram)이 강도단에 복귀하면서 말라 출신 멤버들과 탁쿠르 출신 멤버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슈리 람은 특히 풀란 데비에게 적개심이 컸고, 전임 두목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녀에게 돌렸습니다. 어느 날 말다툼이 총격전으로 번지면서 슈리 람은 비크람을 쏘아 죽입니다. 붙잡힌 풀란은 탁쿠르들의 마을인 베마이(Behmai)에 유폐되었고, 슈리 람과 그의 무리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삼 주간의 감금 끝에 탈출에 성한 그녀는 만 싱(Man Singh)을 비롯한 말라 출신 옛 동료들과 합류해, 오로지 말라로만 이루어진 강도단을 이끌게 됩니다. 이후 풀란의 머릿속에는 오직 복수뿐이었습니다.

1981년 2월 14일, 슈리 람이 베마이에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풀란은 무리를 이끌고 탁쿠르 마을로 향했습니다. 우연히 결혼식이 열리던 날 마을에 도착한 그녀는 가해자를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마을은 샅샅이 뒤졌지만 슈리 람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탁쿠르 카스트 전체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풀란은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을 줄 세워 처형하게 했고, 그날 스물두 명의 탁쿠르 남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은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공의 적 1호

'공공의 적 1호'로 지목된 풀란 데비는 역설적으로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도적들의 여왕'이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대중의 지지 덕분에 그녀는 2년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3년 2월경에는 강도단 대부분이 죽거나 흩어졌고 본인의 건강도 악화되어, 그녀는 당국에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조건 협상에 나섭니다. 무기를 경찰이 아닌 마하트마 간디와 여신 두르가에게 바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내걸며, 그녀는 부하들에게 최대 8년형, 오빠에게 정부 공직, 아버지에게 토지, 그리고 자신에게는 목숨을 유지하는 조건을 얻어냈습니다.

풀란은 48개 건의 혐의로 기소되어 11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수감 중 필요 없는 자궁적출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도소 의사는 "우리는 풀란 데비가 또 다른 풀란 데비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었고, 이것이 회고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994년 가석방으로 석방된 그녀는 하위 카스트 사람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는 단체에 합류했고,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정치 무대에 서다

 도적들의 여왕  풀란 데비(Phoolan Devi): 카스트의 벽을 넘은 인도의 전설

1996년, 풀란 데비는 정계에 입문하여 사마지와디당(Samajwadi Party, 사회주의 정당) 소속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그녀의 정강은 하위 카스트의 권익과 여성의 권리 옹호에 초점을 맞추었고, 상위 카스트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1998년 선거에서 의석을 잃었지만 이듬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2001년 7월 25일, 풀란 데비는 국회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자택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총 다섯 발을 맞았습니다. 병원 이송 후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며칠 뒤 탁쿠르 출신 셰르 싱 라나(Sher Singh Rana)가 경찰에 자수하며, 베마이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풀란 데비를 살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1994년 세카르 카푸르 감독의 영화 <밴디트 퀸>(Bandit Queen)으로 만들어지며 전 세계에 알려졌고, 지금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여성 인권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