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에리 3세(Thierry III, 654~691)는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왕으로, 클로비스 2세와 왕비 바틸드(Bathilde)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었다.
673년,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으로 즉위
673년 형 클로타르 3세가 사망하자, 네우스트리아의 궁정백 에브로앵(Ébroïn)은 티에리 3세를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좌에 앉혔다. 그러나 귀족들이 반발하여 티에리의 또 다른 형인 힐데리크 2세를 새 왕으로 추대했고, 밀려난 티에리는 머리를 깎인 채 수도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힐데리크 2세의 암살과 왕위 복귀
문제는 지나치게 전제적인 통치를 펼친 힐데리크 2세마저 675년 암살되면서 터졌다. 이 혼란 속에서 아키텐은 독립을 회복했고, 티에리 3세는 다시 불러들여져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위에 복귀할 수 있었다.
에브로앵의 득세와 세 왕국의 왕
이후 에브로앵은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군대를 이끌고 티에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티에리를 폐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으로도 임명했다. 결국 티에리 3세는 네우스트리아·부르군트·아우스트라시아, 세 왕국을 모두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명목상의 왕, 실권은 헤르스탈의 피핀에게
하지만 티에리 3세의 통치는 어디까지나 이름뿐이었다. 실질적인 권력은 왕이 아니라 궁정백들의 손에 들어 있었으며, 특히 687년 테르트리 전투에서 헤르스탈의 피핀(Pépin de Herstal)이 승리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실권은 카롤루스 가문의 선조인 피핀 일가로 넘어가게 되었다. 티에리 3세는 이른바 '태평왕(roi fainéant)', 즉 꼭두각시 군주로 남다가 691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