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재즈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 '노래의 퍼스트 레이디'가 걸어온 인생

엘라 제인 피츠제럴드(Ella Jane Fitzgerald, 1917~1996)는 미국의 재즈 가수로, '노래의 퍼스트 레이디(The First Lady of Song)'라는 별명으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맑고 청순한 음색과 뛰어난 즉흥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가수의 시작

재즈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  노래의 퍼스트 레이디 가 걸어온 인생엘라 피츠제럴드는 1917년 4월 25일 미국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에서 어머니 템퍼런스와 아버지 윌리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세탁소에서 일했지만, 아버지는 엘라가 한 살도 되기 전에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새로운 동거인 조셉 다 시우바(Joseph Da Silva)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엘라는 뉴욕 근교에서 자랐습니다. 1923년에는 이복 여동생 프랜시스(Frances)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엘라는 춤에 남다른 재능과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도, 점심시간에도 틈만 나면 춤을 연습할 정도였습니다. 음악에도 깊은 열정을 가져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코니 보스웰(Connee Boswell)의 음반을 즐겨 들었으며, 감리교 신자로서 베서니 아프리카 감리교회(Bethany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처음 음악을 접하고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1932년 어머니 템퍼런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엘라의 삶은 급격히 흔들립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녀의 성적은 하락했고 학교를 자주 빼먹기 시작했습니다. 학대적인 의붓아버지를 피해 친척 집으로 몸을 피신시킨 그녀는 이후 고아원에 맡겨졌지만, 결국 다시 도망쳐 한동안 방황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엘라는 16세에 뉴욕 할렘의 아폴로 극장(Apollo Theater)에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아마추어 나이트(Amateur Night)' 무대에서 코니 보스웰의 곡 두 곡을 불러 우승을 차지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1935년 1월에는 오디션에 합격해 할렘 오페라 하우스(Harlem Opera House)에서 타이니 브래드쇼(Tiny Bradshaw)와 함께 일주일간 공연했고, 이곳에서 칙 웹(Chick Webb)의 오케스트라를 만나 정식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이후 꾸준히 함께 무대에 서며 If You Can't Sing It, You'll Have to Swing It, Love and Kisses, A Tisket, a Tasket 등 여러 히트곡을 녹음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칙 웹이 세상을 떠나자 밴드는 'Ella Fitzgerald and Her Famous Orchestra'로 이름을 바꾸었고, 해체될 때까지 약 150곡을 녹음했습니다.

솔로 활동과 전성기

1941년 엘라는 베니 코네가이(Benny Kornegay)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2년 뒤 무효가 되었습니다. 1942년에는 밴드를 떠나 솔로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수많은 그룹과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무대를 넓혀갔습니다. 스윙 가수로 출발한 그녀는 비밥(bebop), 스캣(scat), 블루스, 삼바,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보컬 역량을 폭넓게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그녀의 창의적인 스캣 즉흥 연주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코미디 영화 Ride 'Em Cowboy에 출연했으며, 이후에도 Pete Kelly's Blues, St. Louis Blues, Let No Man Write My Epitaph 등의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했습니다.

1947년에는 재즈 더블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과 재혼하여 이복 여동생 프랜시스의 아들을 입양했으나, 두 사람은 1953년 이혼했습니다. 1955년에는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로스앤젤레스의 모캄보 클럽(Mocambo)에 엘라의 출연을 강력히 요청하면서 그녀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같은 해 데카(Decca) 레코드를 떠난 엘라는 매니저 노먼 그란츠(Norman Granz)가 자신을 위해 설립한 버브(Verve) 레코드와 함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세계 무대로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엘라는 버브 레코드에서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콜 포터(Cole Porter),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등 거장 작곡가들의 곡을 엮은 송북(Songbook) 시리즈 8장을 녹음했습니다.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과 북미 전역을 투어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굳건히 다졌습니다. 또한 루이 암스트롱과는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엘라 앤 루이(Ella and Louis)》, 《엘라 앤 루이 어게인(Ella and Louis Again)》 등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년의 건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985년 호흡기 문제로 잠시 입원한 그녀는 1986년에는 심부전, 1990년에는 과로로 병원에 실렸습니다. 1993년에는 시력까지 위협하는 당뇨병 탓에 양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1996년 병원 생활을 거부한 그녀는 아들과 손녀와 함께 집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고, 같은 해 6월 15일 심장마비로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생전에 그래미 어워드 14개를 수상하는 등 수많은 영예를 안았으며, 사후에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National Women's Hall of Fame)에 헌액되며 그 위대한 음악적 유산이 오늘날까지 기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