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빌의 탕크레드(?~1112): 제1차 십자군의 전설적 기사
1096년, 삼촌인 타란토의 보에몽(보헤몬드)과 함께 제1차 십자군 원정에 나선 탕크레드는 동방 정복 전역 곳곳에서 뛰어난 무용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진격 도중 타르수스, 아다나, 마미스트라를 차례로 점령했으며, 안티오키아 공성전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1099년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성벽 위에 가장 먼저 자신의 군기를 꽂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군 국가가 수립된 뒤, 탕크레드는 티베리아스를 중심으로 하는 갈릴래아 공국의 영주로 임명되어 자신만의 영지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삼촌 보에몽이 서방에 있는 동안에는 안티오키아 공국의 섭정으로서 통치를 맡았으며, 보두앵 드 부르(훗날의 예루살렘 왕 보두앵 2세)가 무슬림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기간(1104~1108년)에는 에데사 백국의 행정까지 총괄했습니다.
그러나 보두앵이 석방되어 복귀하자, 탕크레드는 마지못해 에데사를 돌려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보두앵과의 대립을 깊게 하여 튀르크 세력과 손을 잡고, 유프라테스 강변 투르베셀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를 격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단순한 충성스러운 부하가 아니라 야심 차고 현실적인 정치가였음을 보여줍니다.
탕크레드의 명성은 사후에도 오래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아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는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La Gerusalemme liberata)에서 탕크레드를 용맹하고 고결한 이상적 기사의 모범으로 묘사했고, 이 작품 덕분에 그의 이름은 유럽 문학사 속에서 불멸의 것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