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전설의 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할리우드의 퀸'으로 불린 그녀의 인생

루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Ruth Elizabeth Davis), 예명 베티 데이비스(1908~1989)는 미국의 배우입니다.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강하고 강인한 여성 역할의 대명사가 된 그녀는 '할리우드의 퀸', '워너 스튜디오의 퀸', '미국 스크린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연기 경력의 시작

전설의 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할리우드의 퀸 으로 불린 그녀의 인생1908년 4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태어난 루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는 매사추세츠, 뉴저지, 뉴욕을 오가며 성장했습니다. 부모는 그녀가 일곱 살 때 갈라서게 되었고, 그녀와 여동생 바버라는 사진작가였던 어머니 루스 손에서 자랐습니다. 젊은 시절 '루스 엘리자베스'는 '베티'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데, 이는 발자크의 소설 『바르쿠신 베트(Cousine Bette)』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사추세츠 애시번햄의 커싱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베티는 학교 연극 무대에서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의 요정 역을 맡으며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댄스 레슨을 받았고, 뉴욕의 존 머리 앤더슨 연극학교에 입학해 3년간 연기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1928년에는 조지 큐커가 이끄는 극단에 합류하여 『브로드웨이』, 『대지 사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해 큰 호평을 받았으며, 『브로큰 디시즈(Broken Dishes)』로 브로드웨이 데뷔 무대를 밟았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재능을 인정받은 베티 데이비스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주목을 받아 1931년 첫 영화 『배드 시스터(The Bad Sister)』로 데뷔했습니다. 유니버설에서 두 편을 더 촬영한 뒤 몇 개의 단역을 맡았지만, 곧 조지 앨리스 주연작 『신을 흉내 내는 남자(The Man Who Played God)』(1932)에서 주연을 맡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녀는 워너 브러더스 픽처스와 7년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하몬 O. 넬슨과 결혼했다가 6년 뒤 이혼했습니다.

이후 4년 동안 베티는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싱싱 교도소(20,000 Years in Sing Sing)』와 『지미 더 젠트(Jimmy the Gent)』(1935)를 포함해 무려 25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1934년에는 차갑고 교활한 젊은 여성 밀드레드 로저스 역을 맡겠다고 고집했는데, 회사 측은 호감 없는 배역이 경력에 해가 된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에서 뛰어난 연기로 비평계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1935년에도 『프론티어 타운(Frontier Town)』에서 또 한 번 인상적인 악역을 소화했습니다. 그리고 1936년, 방황하는 몰락 연극배우 조이스 히스 역을 맡은 『위험한 여자(Dangerous)』로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워너 브러더스가 그녀가 원하던 배역 두 건을 거절당하게 하고 하급 작품만 내주면서 갈등이 깊어졌고, 베티는 결국 헐리우드를 떠나 런던에서 두 편의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화려한 전성기

전설의 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할리우드의 퀸 으로 불린 그녀의 인생1937년, 베티 데이비스는 험프리 보가트와 함께 『마크드 우먼(Marked Woman)』에 출연하며 헐리우드에 화려하게 컴백했습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역을 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워너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집필된 작품들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험프리 보가트, 헨리 폰다,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한편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 역을 거절했는데, 파트너로 얼론 플린이 강요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를 그 역할에 맞는 배우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쓰인 『제저벨(Jezebel)』에 출연해 폭발적인 연출력을 선보였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에게 두 번째 오스카를 안겼습니다. 이후 그녀의 경력은 순탄히 치솟았고, 드라마 『다크 빅토리(Dark Victory)』(1939), 살인범 역의 『수정 편지(The Letter)』(1940), 탐욕스러운 조종자를 연기한 『작은 여우들(The Little Foxes)』(1941) 등으로 수차례 오스카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경력 전반에 걸쳐 상처 입은 여성, 복수에 사로잡힌 여성, 강인하고 교활한 여성, 나아가 괴물 같은 여성까지, 비정형적인 캐릭터들을 폭넓게 소화하며 배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말년과 마지막 무대

1942년, 베티 데이비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참전 용사들에게 공연과 음식을 제공하는 '헐리우드 칸틴(Hollywood Canteen)'을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1946년에는 자체 제작사 'BD 인코포레이티드'를 설립해 글렌 포드와 함께한 『도난당한 삶(A Stolen Life)』 단 한 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1949년에는 『숲 너머(Beyond the Forest)』 촬영 과정에서 감독과 불화를 겪으면서 워너 브러더스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이듬해 그녀는 연극계와 예술가들 간의 경쟁을 그린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에서 마고 채닝 역의 절찬받는 명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만장일치한 극찬을 받았고,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휩쓸었습니다. 같은 해 그녀는 이 영화에서 함께 연기한 게리 메릴과 네 번째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입양했으나 1960년 이혼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경력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좋은 배역들을 맡았으며, 『베이비 제인은 어떻게 되었나?(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에서의 연기로 열 번째이자 마지막 오스카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말년에는 저예산 영화들은 물론 연극과 텔레비전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베티 데이비스는 1989년 10월 6일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미국병원에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