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타르 1세(Lothaire, 941~986)
로타르 1세는 954년 아버지인 루이 4세 해외왕(Louis IV d'Outremer)의 뒤를 이어 서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 군주 중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삼촌 브루노의 섭정과 초기 통치
즉위 당시 로타르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삼촌이자 쾰른 대주교 겸 로렌 공작이던 브루노(Bruno)가 섭정으로서 국정을 대신 운영했다. 브루노는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양 왕국 사이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수행했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로타르의 초기 통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위그 카페와의 관계 악화
그러나 로타르가 직접 통치를 주도하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최강의 세력이던 로베르 가문 출신 귀족 위그 카페(Hugh Capet)의 지지를 점차 잃어갔고, 이는 왕권 약화로 직결되었다. 위그 카페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영토들을 확장해 나갔으며, 왕의 명령이 실질적으로 미치는 범위는 점점 좁아져 갔다.
황제 오토 2세와의 갈등
로타르의 재위 기간은 또한 신성 로마 제국과의 갈등으로도 얼룩져 있다. 978년 로타르는 로렌 지역 문제를 둘러싸고 기습적으로 아헨을 공격했으나, 황제 오토 2세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혀 파리가 포위당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980년 화약을 맺으며 갈등을 일단락지었지만, 이 과정에서 로타르의 대외적 위상은 크게 훼손되었다.
카롤링거 왕조의 쇠퇴
로타르의 통치는 카롤링거 왕조 권력이 서서히 무너져 가던 시기를 상징한다. 986년 그가 사망한 뒤 아들 루이 5세 게으름왕(Louis V le Fainéant)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이듬해인 987년 후계자 없이 요절하면서 카롤링거 왕조는 약 250년의 역사에 막을 내렸다. 같은 해 귀족들의 추대를 받은 위그 카페가 새로운 왕으로 선출되면서 프랑스 역사는 카페 왕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왕위 계보
전임 왕: 루이 4세 해외왕 | 서프랑크의 왕 (954~986) | 후계 왕: 루이 5세 게으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