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마리 마빙트, '위험의 신부'라 불린 프랑스의 전설

마리 펠리시 엘리자베트 마빙트(Marie Félicie Élisabeth Marvingt, 1875~1963)는 프랑스의 스포츠 우먼이자 개척기 비행사, 산악인입니다. 대담한 모험심으로 수많은 별명을 얻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위험의 신부(la fiancée du danger)'입니다.

마리 마빙트,  위험의 신부 라 불린 프랑스의 전설

다섯 살에 4km를 헤엄치다

마리 마빙트,  위험의 신부 라 불린 프랑스의 전설

마리 마빙트는 1875년 2월 20일 프랑스 칸탈 지방의 오리야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인 엘리자베트 브뤼스킨과 펠릭스 마빙트는 1880년 메스로 이주했고, 마리는 로렌 지방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셋은 유아기에, 나머지 하나는 열아홉 살에 요절했습니다. 아버지 펠릭스는 스포츠를 무척 사랑했고, 그 열정을 고스란히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특히 수영, 등산, 카눅에서 재능을 보였는데, 마리는 다섯 살에 이미 4km를 헤엄쳐 건널 수 있었고, 열다섯 살에는 낭시에서 코블렌츠까지 400km를 카누로 횡단했습니다. 열네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낭시로 이주해 가정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그 와중에도 스포츠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한 사이클 선수

서커스의 세계에 매료된 마리는 랑시 서커스에서 훈련하며 곡예, 공중그네, 저글링, 줄타기를 익혔습니다. 아버지의 격려 속에 자전거, 스키, 스케이트, 펜싱, 체조 등 다양한 종목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1899년에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 되었고, 1905년에는 센 강을 헤엄쳐 파리를 횡단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수영, 카누, 사격, 스키, 스케이트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산악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불과 몇 년 만에 프랑스와 스위스 알프스의 대부분 봉우리를 정복했습니다.

1908년에는 투르 드 프랑스 출전에 도전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가 신청이 거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하지 않은 그녀는 남성 선수들과 동일한 코스를 시차를 두고 출발해 결국 완주해냈습니다.

'대담한 마리'

이윽고 항공의 세계에도 눈을 돌린 마리는 1909년 기구(풍선) 조종사 자격증을, 1910년에는 비행기와 수상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해당 자격을 딴 역사상 세 번째 여성이었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수많은 상과 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비행 시간과 무사고 비행 기록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09년 10월에는 낭시에서 영국까지 날아 올라 북해와 영국 해협을 비행기로 넘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사고와 거친 착륙에도 그녀의 하늘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1910년, 마리는 부상자를 항공기로 후송하는 구상에 착안해 의료항공의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 원리는 훗날 의료항공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가정 안에 머무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녀의 대담함과 뛰어난 솜씨는 언론의 큰 사랑을 받았고, '대담한 마리', '하늘의 여왕', '지치지 않는 세계일주자', '잔 다르크 이후 가장 놀라운 여성' 등 화려한 별명들을 얻었습니다.

남장하고 참호까지

마리 마빙트,  위험의 신부 라 불린 프랑스의 전설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리는 조종사로 자원했지만, 당시의 다른 여성 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거부당했습니다. 그녀는 전선에서 간호사로 복무하다가, 한 젊은 중위의 도움으로 남장하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참호에서 직접 싸우다 정체가 들통나 송환되었지만, 포슈 원수의 개입 덕분에 이탈리아의 알프스 엽병대에 합류할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이후 부상병 후송 임무와 폭격 임무를 수행했으며, 1915년 폭격 작전의 공로로 전공십자(Croix de Guerre)를 받았고, 군 항공에 입대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의료항공의 개척자

전쟁이 끝난 후, 의료항공의 중요성을 확신히 믿게 된 마리는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강연을 펼치고 항공 의료 서비스 설립에 앞장섰습니다. 1935년에는 최초로 졸업한 비행간호사가 되었고, 같은 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기사)에 서임되었습니다. 문학 학위를 보유하고 일곱 개 국어를 구사했던 그녀는 전간기에 북아프리카에서 기자이자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항공 간호사로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전후에는 의료항공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두 편, <구원하는 날개>와 <비둘기에게 구원받다>를 집필하고 연출했습니다. 1955년, 80세의 나이에 제트 헬리콥터 SNCASO SO-1221 '진(Djinn)'으로 헬리콥터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86세에는 낭시에서 파리까지 자전거로 달려간 뒤, 헬리콥터를 몰고 낭시로 돌아오는 기행도 남겼습니다.

열일곱 개의 세계 기록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포함한 서른넷 개의 훈장을 보유했던 '위험의 신부', '세기의 가장 놀라운 여성'은 안타깝게도 말년을 빈궁 속에서 보내다가 1963년 12월 14일 낭시 교외에서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위업은 오랫동안 잊힌 채 묻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