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콜먼 고블 존슨(Katherine Coleman Goble Johnson, 1918~2020)은 미국의 수학자이자 천체물리학자입니다. NASA에서 근무하며 미국 우주 개발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했고, 특히 머큐리 계획과 아폴로 11호 임무의 비행 궤도를 계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남다른 재능
캐서린 콜먼은 1918년 8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교사인 어머니 조일렛과 농부인 아버지 조슈아 사이에서 태어난 네 자녀 중 하나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지능을 드러냈습니다. 네 살 무렵, 부모가 딸이 알아듣지 못하길 바라며 특정 단어를 끼워 대화할 때면, 어린 캐서린은 자신이 그 단어들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슬그머니 보여주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녀는 수학에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였습니다. 당시 인종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였기에, 캐서린과 형제자매들은 흑인 학생만 다니는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당시 그녀가 거주하던 카운티는 흑인 아동에게 9~10세 이상의 교육을 제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콜먼 가족은 자녀들을 흑인 학생 전용 고등학교인 인스티튜트(Institute)에 보냈습니다. 캐서린은 14세에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학업을 마친 뒤, 역시 인종 분리 정책 아래 운영되던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녀는 들을 수 있는 모든 수학 강좌를 빠짐없이 수강했고, 미국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초기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한 명인 윌리엄 클레이터(William Claytor) 교수는 그녀를 위해 아예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캐서린은 18세에 수학과 프랑스어를 최고 성취인 '수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로 졸업했습니다.
1939년 제임스 프랜시스 고블(James Francis Goble)과 결혼하여 세 딸 콘스턴스, 조일렛, 캐서린을 두었습니다. 1956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1959년 제임스 A. 존슨 중령과 재혼했습니다.
'치마 입은 컴퓨터'
졸업 후 캐서린 존슨은 버지니아주 매리언으로 이주해 인종 분리된 초등학교에서 수학, 프랑스어,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교직은 그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녀는 수학 분야에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 가족 모임에서 한 친척이 전미 항공 자문 위원회(NACA, 훗날의 NASA)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을 채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1953년 캐서린은 수학 계산을 전담하는 여성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치마 입은 컴퓨터(computers in skirts)'라 불렀습니다.
그녀와 동료들은 항공기 블랙박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밀한 수학 계산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어느 날 캐서린은 동료 한 명과 함께 임시로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비행 연구 팀에 배속됩니다. 뛰어난 수학 실력 덕분에 금세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그녀는 이후 새로운 팀에 계속 남게 됩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굴하지 않고, 그녀는 여성 단 한 명도 참석한 적 없던 회의에 당당히 자리했으며, "내가 그 일을 해내고 있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히 했습니다.
아폴로 11호
1958년까지 캐서린 존슨은 항공기 공기역학 등 첨단 분석 업무를 수행했으며, 같은 해부터 25년 뒤 은퇴할 때까지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1959년에는 머큐리 계획을 통해 최초로 우주에 나갈 미국인 앨런 셰퍼드(Alan Shepard)의 우주 비행 궤도를 계산했고, 이 임무의 발사 창구, 즉 로켓 발사에 가장 적합한 시점 산출도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셰퍼드의 역사적인 비행은 2년 뒤인 196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962년 NASA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활용해 지구 궤도를 계산했을 때, 캐서린은 그 결과를 검증할 사람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컴퓨터와 협력하며 일하게 됩니다. 1969년에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이룬 아폴로 11호 임무의 달행 궤도를 직접 계산했습니다. 또한 아폴로 13호 임무에도 참여하여, 사고 발생 시 승무원들이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절차와 도표 작업을 도왔습니다. 말년에는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과 화성 유인 탐사 임무 계획에도 관여했습니다.
평생의 경력과 천체물리학 분야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캐서린 존슨은 수많은 영예와 상을 받았습니다. 2015년 11월에는 미국 최고의 민간인 서훈인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습니다.
캐서린 존슨은 2020년 2월,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