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페티옹 드 빌뇌브(Jérôme Pétion de Villeneuve, 1756~1794)는 프랑스 혁명기의 대표적인 정치가 중 한 명이다. 혁명의 전위(前衛)로 명성을 얻었던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도피와 몰락의 길을 걷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혁명의 전위로 떠오르다
1789년 삼부회 대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친우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입헌의회 좌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왕실 가족의 바렌 도주 사건이 발생하자 두 사람은 혁명 수호의 상징으로 부상하며, 각각 '굴하지 않는 자(L'Inflexible)'와 '타락하지 않는 자(L'Incorruptible)'라는 별명을 얻었다.
파리 시장과 국민공회 의장
1791년에는 파리 시장에 선출되며 혁명 정국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점차 지롱드파에 기울었다. 1792년 9월 학살이 벌어지던 시기에는 중립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국민공회 의장을 역임하는 한편 자코뱅 클럽을 이끌며 혁명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몰락과 비극적 최후
그러나 운명은 급격히 기울었다. 1793년 6월 2일 지롱드파 축출 사태에서 그는 체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간신히 도피에 성공했다. 노르망디에서 봉기를 일으켜 국민공회에 맞서려 했으나 실패했고, 보르도로 숨어들었다. 결국 추적망이 좁혀지자 그는 자결을 택했으며, 그의 시신은 훗날 숲속에서 늑대에게 반쯤 먹힌 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