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육상 선수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 1940~1994)는 질병과 장애, 그리고 인종 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을 불굴의 의지로 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했습니다. 그녀는 흑인 미국 선수들이 달려갈 길을 연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투병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
윌마 글로디언 루돌프는 1940년 6월 23일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의 가난한 가정에서 21명 형제자매 중 열일곱째로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객실 청소부, 아버지는 짐꾼이었고,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폐렴과 성홍열을 앓았고, 특히 소아마비(폴리오)는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소아마비는 매년 수백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남기던 무서운 병이었고, 의사들은 윌마가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종 차별이 만연한 시절이었기에 그녀는 도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었고, 일주일에 두 번 내슈빌까지 이동하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보조기를 찬 그녀는 매일 네 번씩 마사지를 받아야 했는데, 이 마사지는 형제자매들이 배워서 직접 해주었다고 전해집니다.
달림으로 찾은 치유
꾸준한 치료 끝에 윌마 루돌프는 왼쪽 다리의 보조기를 벗을 수 있었고, 11세에는 교정용 신발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만 보며 보낸 어린 시절을 만회하고 다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는 스포츠에 온몸을 던졌습니다.
처음 선택한 종목은 농구였습니다. 코치는 작은 체구에 민첩한 그녀에게 '스키티(Skeeter, 모기)'라는 별명을 붙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작고 빨라서 늘 내 눈앞을 방해한다고." 이후 코치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육상으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윌마는 곧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테네시 대학교 여자 육상 클럽 '타이거벨레스(Tigerbelles)'의 서머 캠프에 초청받았고, 16세이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해 계주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여인'
1958년 윌마 루돌프는 뛰어난 성적과 헌신적이고 엄격한 지도로 유명한 에드워드 템플 감독이 이끄는 타이거벨레스에 정식 합류했습니다. 같은 해 첫 딸 욜란다를 낳았고, 이후 네 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1960년 7월에는 여자 200m를 23초 미만으로 달려 생애 첫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윌마의 이름을 역사에 새긴 것은 단연 1960년 로마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녀는 100m, 200m, 4×100m 계주에서 금메달 3개를 휩쓸었습니다. 특히 100m 결승에서는 경쟁자들을 3미터나 앞선 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화려한 활약 덕분에 그녀는 대회 최고의 인기 스타로 떠올랐고, '토네이도, 지구에서 가장 빠른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영웅의 환영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윌마를 위해 클라크스빌은 '웰컴 윌마 데이(Welcome Wilma Day)'를 열어 그녀의 승리와 귀환을 축하했습니다. 인종 차별이 일상이던 시절, 챔피언 윌마는 테네시 주지사와 시 당국에 행사의 전면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고, 그 결과 1천여 명이 참석한 만찬과 퍼레이드가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이는 이 도시에서 열린 최초의 인종 통합 공식 행사였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
윌마 루돌프의 승리는 그녀를 미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흑인 여성 스포츠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아이콘적 위상은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스포츠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TV 프로그램 출연과 그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00m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고 몇 차례 우승을 추가한 뒤, 윌마는 정점에 서 있을 때 은퇴하겠다는 뜻으로 1962년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테네시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교사가 되었으며, 두 번의 이혼 끝에 네 자녀를 홀로 키우면서도 인종 차별 반대 운동과 스포츠 진흥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시카고에서는 흑인 소녀들을 위한 체육 교육 프로그램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윌마 루돌프는 1994년 1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4세. 그러나 그녀가 남긴 위업과 인생 여정이 흑인 미국 선수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금까지도 막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