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역학자 콰라이샤 압둘 카림(Quarraisha Abdool Karim, 1960년생)은 여성의 HIV 감염 전파 연구와 예방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과학자입니다. 특히 2010년 발표된 테노포비어 젤 임상시험 결과는 에이즈 예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2018년에는 독자 투표를 통해 '노베엘(Nob'Elle) 의학상'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에서 쌓은 학업
콰라이샤 압둘 카림은 1960년 3월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주의 통가트(Tongaat)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981년 더반-웨스트빌 대학교에서 이학 학위를 취득한 뒤 생화학 분야의 공부를 이어갔고, 1988년에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기생충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학문적 탐구를 계속한 그녀는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역학 연구의 토대를 완성했습니다.
에이즈 팬데믹,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첫걸음
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HIV 유행병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1993년에는 임산부의 4% 이상이 HIV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1995년에는 감염 규모가 팬데믹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간주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콰라이샤 압둘 카림은 이 시기부터 전염병이 확산되는 메커니즘, 특히 여성 사이에서의 확산 양상을 규명하기 위한 사회·행동 과학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성별, 나이, 이동 경로에 따른 바이러스 전파 차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했으며, 1992년에는 여성이 HIV 감염에 더욱 취약하다는 결론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1990년대 내내 그녀는 HIV 확산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며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분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CAPRISA 004 — 세계를 놀라게 한 임상시험
2007년 남아프리카 에이즈 연구 프로그램 센터(CAPRISA, Centre for the AIDS Program of Research in South Africa)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인 테노포비어 젤(tenofovir gel)이 HIV 전파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했습니다. 'CAPRISA 004'로 명명된 이 연구의 설계와 추진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콰라이샤 압둘 카림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역사적이었습니다. 테노포비어 젤을 사용할 경우 HIV 감염 위험이 39%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이 성과는 201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제18차 국제 에이즈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고, 현장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여성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HIV 예방 수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닙니다.
세계가 인정한 수상 경력
HIV 전파 연구에 대한 혁신적인 업적 덕분에 콰라이샤 압둘 카림은 수많은 상과 영예를 안았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고 훈장인 마풍구브웨 훈장(Order of Mapungubwe)을 수여받았으며, 2014년에는 TWAS-레노버 과학상, 2016년에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 과학자상(For Women in Science)'을 수상했습니다.
TWAS(제3세계 과학 아카데미) 회장은 그녀가 TWAS-레노버 과학상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압둘 카림 박사의 연구에 깊은 감탄과 존경을 보냅니다. 그녀는 높은 파급력을 지닌 과학적 성과의 모범적인 이력을 갖추었으며, 그 연구 곳곳에는 깊은 인간애가 담겨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HIV와 결핵 연구를 확장해 가는 수백 명의 젊은 아프리카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진정한 모범 과학자이며, 전 세계 동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는 인물입니다."
콰라이샤 압둘 카림은 오늘날에도 연구와 후학 양성을 통해 HIV 퇴치라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으며, 그녀의 여정은 과학이 인류의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