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권 운동가 애니 리 윌커슨 쿠퍼(1910~2010)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 확보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특히 앨라배마주 달라스 카운티 보안관에게 주먹을 날린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종 차별 속에서 성장하다
애니 리 윌커슨은 1910년 6월 2일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태어났습니다. 루시 존스와 찰스 윌커슨 시니어의 열 자녀 중 한 명이었으며, 인종 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사회 한복판에서 성장했습니다.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1870년 비준된 미국 헌법 수정 제15조는 이론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투표권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남부 주들은 흑인 공동체의 투표 접근을 막기 위해 각종 방법을 앞다퉈 고안해냈습니다. 앨라배마주 역시 1901년 새 헌법을 제정해 재산과 문해력 조건을 내걸며 투표 자격을 제한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 흑인 시민과 수많은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잃었습니다. 애니 리는 흑인이 이론상이라도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랐습니다.
열두세 무렵, 애니 리는 학교를 그만두고 켄터키주로 이주해 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흑인들이 실제로 투표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큰 감격을 받은 그녀는 자신도 투표하고 싶어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에서는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는 데 성공합니다.
투표를 원하다가 해고당하다
그로부터 약 40년간 애니 리 윌커슨 쿠퍼의 삶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1962년, 그녀는 늙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셀마로 돌아왔고, 도시에 정착해 요양원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이전에 투표 경험이 있던 애니 리는 셀마에서도 선거인 명부에 등록할 뜻이 있었지만,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담당 서기는 그녀가 시험에 떨어졌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은 애니 리는 아멜리아 보이트턴 로빈슨이 이끄는 ‘달라스 카운티 유권자 연맹’과 학생 비폭력 조정위원회(SNCC)에 합류해 여러 차례 다시 도전했습니다.
1963년 10월, SNCC는 흑인 시민들에게 달라스 카운티 법원에 모여 투표 등록을 신청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애니 리 쿠퍼는 수 시간 동안 법원 밖에서 줄을 선 400명의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고, 애니 리에게는 뼈아픈 대가가 따랐습니다. 고용주였던 던 씨는 그녀가 또 다른 직원 엘노라 콜린스와 함께 군중 속에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두 사람을 모두 해고했을 뿐 아니라 셀마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도록 방해까지 했습니다. 애니 리는 결국 토치 모텔에서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65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가 셀마에 들어와 투표권을 위한 행동을 본격화했습니다. 다시 한번 군중이 달라스 카운티 법원 앞에 모여 투표 등록을 기다렸고, 애니 리 윌커슨 쿠퍼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몇 시간의 대기 끝에, 인종 통합에 반대하던 보안관 짐 클라크는 군중에게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이에 애니 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애니 리의 증언에 따르면, 보안관과 부관들은 자리를 비키기를 거부한 한 남성을 폭행했고, 짐 클라크는 곤봉으로 그녀를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돌려 보안관의 턱에 오른손 직선 펀치를 꽂았고, 보안관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경찰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애니 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 제압당했고, 짐 클라크는 곤봉으로 그녀를 계속 구타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운동가이자 정치인 존 루이스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클라크가 그녀를 그토록 세게 때려서 몇 줄 뒤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애니 리는 체포되어 ‘형사적 도발’ 혐의로 기소된 뒤 11시간 동안 구금되었습니다. 훗날 그녀는 54세의 자신이 다시 보안관 짐 클라크에게 폭행당할까 우려한 탓에 석방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가 감옥에 있는 동안, 마틴 루터 킹은 연설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이렇습니다. 쿠퍼 부인은 그 줄에 서 있었고, 언론에는 진실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쿠퍼 부인이 단순히 때리고 싶어서 돌아서서 클라크 보안관을 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우리는 보복하지 않고 되치지도 않는 철학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쿠퍼 부인이 무언가를 했다면, 그것은 클라크 보안관의 도발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손에 넣은 투표권, 투표권법
이 사건과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이어진 행진 이후, 투표 접근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1965년 8월 의회를 통과했고,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서명했습니다. 애니 리는 마침내 자신의 주 선거인 명부에 등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니 리는 2010년 6월 100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장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106세까지 사셨으니, 나도 그만큼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같은 해 11월, 애니 리 윌커슨 쿠퍼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이어진 행진을 다룬 영화 셀마(감독 에바 듀버네이)에서는 배우 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애니 리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애니 리 쿠퍼의 위대함, 그리고 그녀의 용기가 하나의 운동 전체를 위해 상징하는 바” 때문에 이 역할을 수락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