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독립 초기, 네루와 사르다르 파텔 사이의 갈등은 새로 태어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현안이었습니다. 네루는 아제메르 사건과 관련해 벌어진 일들을 간디지에게 알리는 메모를 보내며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총리에게 그러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는가? 이러한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하는 것인가? 만약 총리가 그런 조치를 취할 권리가 없고 관련 결정을 내릴 권한도 없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고 맡은 책임을 다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루의 메모: "내가 물러나거나 사르다르가 물러나야 한다"
네루는 메모에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배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발생하는 실질적인 어려움들에 대한 원칙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해,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집중시킬 수 있는 내각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제가 물러나거나 사르다르가 물러나야 합니다. 저로서는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한 명이 정부를 떠난다고 해서 앞으로 서로 대립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네루는 이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정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우리는 변함없이 믿음직한 국민회의 당원이자 든든한 동반자로서, 각자의 활동 분야에서 다시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파텔의 반론: "총리는 동료 장관들 중 첫 번째일 뿐"
사르다르 파텔은 자신의 서한에서 총리의 책임과 권한에 관한 네루의 견해에 명백히 반대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총리가 그런 식으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총리는 결국 전제군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총리란 정부 안에서 동격의 장관들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있을 뿐이며, 동료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권한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파텔은 간디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총리는 메모에서 총리와 내무장관 사이에 화합이 없다면 한 사람은 떠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떠날 사람은 저여야 합니다. 저는 이미 오랜 세월 현역으로 봉직해 왔습니다. 반면 총리는 국가적으로 저명한 지도자이고 아직 젊으며, 스스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왔습니다. 저와 그의 사이에서 내려질 결정이 그에게 유리하게 기울 것이라는 점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그 자리를 떠나는 문제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습니다."
간디의 단식과 국가적 위기, 그리고 운명적인 마침표
두 지도자 간의 이 논쟁은 간디의 단식으로 인해 논의가 연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정도 있었습니다. 카슈미르 문제가 절정에 달해 있었고, 국내의 종교·공동체 간 긴장 역시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인도 정부는 얼음 위를 걷듯 위태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사소한 충격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48년 1월 30일 간디가 암살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네루와 파텔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다툼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국민 앞에 섰고, 추가적인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간디의 죽음은 네루와 파텔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반목과 불화는 마침내 시간의 구렁텅이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