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나타카 순회를 마친 사다르 파텔은 이어서 15일간 비하르(Bihar)를 방문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시타마르히(Sitamarhi), 문게르(Munger), 참파란(Champaran), 가야(Gaya)에서 열린 지구 회의에서 차례로 연설했습니다. 사다르 파텔이 비하르에 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멀리서까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수탈의 역사 속에 놓인 비하르의 농민
비하르 농부들의 처지는 구자라트(Gujarat) 농부들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두 주의 농민들은 델리 술탄국 시대와 무굴 제국 시대, 그리고 이후 통치자들의 시대 내내 가혹한 수탈과 유린을 당해 왔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 역시 농민들을 철저히 착취했고, 이제는 영국 왕실의 직접적인 착취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발라브바이(Vallabhbhai) 자신이 농부의 아들이었기에, 농민들의 고통을 그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하르 농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 사다르 파텔의 마음은 울었습니다. 그는 비하르 농민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하나로 뭉쳐 권리를 위해 싸워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농부는 모든 이를 먹여 살리는 가장 위대한 존재"
그는 연설에서 지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농부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상류층이라 여기는 어떤 이보다도 위대합니다." 사다르의 연설은 가난한 농민들 사이에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해방을 갈망했지만 조직하는 방법과 싸우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다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었습니다.
푸르다 관습에 대한 경종
비하르에서 사다르 파텔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푸르다(purdah, 여성 격리·베일 관습)가 비하르를 다른 어느 주보다도 심하게 얽어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을을 일일이 돌며 사람들에게 여성에게 베일을 씌우는 관습을 멈추라고 전했습니다. "여성을 담장 안에 가두어 두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자매, 딸, 아내입니다. 모든 일에서 그들의 협조를 받으십시오."
사다는 바르돌리(Bardoli) 운동 당시 여성 자원봉사자 그룹을 조직해 놀라운 성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 구자라트 자매들의 그 공헌을 결코 잊지 못했던 그는 비하르 농민들에게 바르돌리 운동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앞장서 협조했는지, 그리고 여성들의 끈기 덕분에 운동가들이 끝까지 최전선에 서서 승리를 거두었는지 생생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전한 한 가지 좌우명
비하르의 젊은이들 역시 사다르 파텔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사다는 곳곳에서 청년들에게 단 한 가지 좌우명을 전했습니다. "구호만 외치지 말고 행동에 나서라. 하고자 하는 일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라. 국가에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삶에 혁명을 일으켜라."
15일간의 순회는 비하르라는 낙후된 주에 희망이라는 새로운 혁명의 물결을 일으켰고, 비하르 역시 국민 운동에 기여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