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미니어처에 묘사된 오토 3세.
오토 3세(980~1002)
오토 3세는 리우돌핑 왕조 출신의 독일 국왕이자 신성로마황제로, 황제 오토 2세의 아들이었다. 그는 겨우 3살 반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초기 정무는 모후 테오파노가 섭정으로 주관했다. 테오파노가 991년 세상을 떠난 뒤에는 할머니인 아델라이데가 섭정 역할을 이어받았고, 오토 3세는 995년에 비로소 친정을 시작했다.
996년에는 교황 요한 15세의 초청으로 로마를 향했으나, 도착하기 전에 요한 15세가 선종하고 말았다. 오토 3세는 자신의 사촌인 브루노를 새 교황으로 추천했고, 브루노는 교황 그레고리오 5세로 즉위했다. 같은 해 그레고리오 5세는 오토 3세에게 황제 관을 수여했다. 997년에는 대립교황 요한 16세(본명 요한 필라가토스)를 축출하고 그레고리오 5세를 성 베드로좌에 복귀시키기 위해 다시 로마로 진군했다.
그니즈노 회의와 폴란드와의 우호
1000년에는 유명한 그니즈노 회의가 열렸다. 이 행사는 성 보이치에흐(성 아달베르트)의 무덤을 참배하는 순례이자, 당시 폴란드의 수도였던 그니즈노에서 폴란드 공작 볼레스와프 1세(용맹공)와 가진 회담이기도 했다. 오토 3세는 그 이전부터 볼레스와프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함께 이교도 토벌 원정에 나서기도 했다. 성 보이치에흐 역시 그의 친우로, 997년 원정 중 순교했으며 오토 3세는 훗날 그의 무덤을 직접 찾았다.
이 회담에서 오토 3세는 폴란드 공작의 머리에 티아라를 얹어주고, 성모리츠의 창 복제품과 주님의 십자가 못을 하사했으며, 동시에 공물 납부 의무를 면제해주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니즈노에 대주교구가 설립되었고, 그 산하에 크라쿠프, 브로츠와프, 코워브제크의 주교구가 두어지며 폴란드 교회 체제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로마 제국 부흥의 꿈과 죽음
오토 3세는 '로마 제국의 갱신'이라 불리는 대계를 추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폴란드와 헝가리 등과의 협력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는데, 대표적으로 헝가리의 이슈트반 1세(성 이슈트반)의 왕관 수여를 승인한 것이 있다. 그러나 1001년 말, 로마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 원정을 준비하던 중, 1002년 초 이 원정 도중 아마도 말라리아로 인해 요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