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토지세 인상, 불의의 시작
서기 1927년, 아메다바드는 폭우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카티아와르 지역의 바르돌리 탈루카에서는 그해 농사가 풍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식민 정부는 오히려 바르돌리 지역의 토지세를 30%나 인상했다. 이는 명백한 불의였으며, 그러한 조치를 뒷받침할 법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분노한 농민들은 사르다르 파텔에게 도움을 청했다.
파텔은 봄베이 주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이 부당한 명령의 철회를 요청했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농민들은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정부는 오직 자신들의 결정을 강행하려 할 뿐이었다.
바르돌리 탈루카 평의회 회의
즉각 운동을 시작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1928년 2월 8일 바르돌리 탈루카 평의회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사르다르 파텔이 주재했으며, 아메다바드와 아난드에서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그중 마하데브 데사이와 아난드 스와미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회의에서 파텔은 농민들에게 냉정하게 현실을 일깨웠다. 정부에 맞서 투쟁한다면, 정부는 그들의 토지와 가축, 가재도구를 빼앗고 감옥에 가둘 것이며, 마을에 불을 지르고 여성과 아이들에게까지 곤봉을 휘두를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물었다. "그만큼의 고통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농민들은 답했다. "사르다르 파텔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신다면, 어떤 고난이든 기꺼이 견디겠습니다."
마지막 협상 시도와 사티아그라하 개시
평의회에서는 정부의 불의에 맞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지만, 그에 앞서 봄베이 주지사에게 명령 취소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파텔은 주지사에게 토지세 철회를 간곡히 요청했으나, 돌아온 것은 "그 서한은 법적 검토를 위해 토지세 부서에 넘겼다"는 짧은 회신뿐이었다.
정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자, 바르돌리에서 사티아그라하(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가 개시되었다. 1928년 2월 12일, 바르돌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농민들은 '반데 마타람' 구호를 외치며 운동에 나섰다.
"진정한 외지인은 영국인들이다!"
이에 정부 관료들은 신문에 성명을 실어 "사르다르 파텔은 외지인일 뿐, 바르돌리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비난했다.
파텔은 신문을 통해 격렬하게 반박했다. "여기는 내 조국이다. 내가 어디로 가든 나는 이 조국으로부터 불려간 것이다. 진정한 외지인은 이 나라에 들어와 불의의 권력에 앉아 있는 영국인들이다. 그러니 떠나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영국인들이다!"
고리대금업자 문제와 파텔의 제지
1928년 2월 15일, 정부는 바르돌리 지역의 고리대금업자 60명에게 인상된 토지세를 즉시 납부하라고 명령했다. 이 중 두 명이 실제로 인상분을 납부하자, 바르돌리의 농민들은 해당 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파텔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투쟁의 대상은 오직 정부여야 한다. 우리끼리 서로 싸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처럼 파텔은 운동이 무질서한 분노로 흐르지 않고 비폭력이라는 원칙 안에서 유지되도록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