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는 독특하지만 억울한 관행이 있었습니다. 정부 관리가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숙박과 식사 등 모든 편의를 마을 주민들이 무료로 제공해야 했고, 주민들은 일종의 무상 노역을 강요받았습니다. 이러한 강제 노역을 '베가르(Begar)'라고 불렀습니다. 고드라(Godhra) 회의에서는 바로 이 강제 노역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안들은 사르다르 파텔(Sardar Patel)의 승인을 받아 봄베이 커미셔너 프랫(Mr. Pratt)에게 전달되었으며, 파텔은 서신을 통해 정부가 이 결의안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프랫은 이 초안을 읽고 격분하여 종이를 찢어버리고 아무런 회신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자 발라브바이(Vallabhbhai)는 두 번째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 번째 편지마저 묵살되자 발라브바이는 세 번째 편지를 보내며 단호하게 경고했습니다. "10일 안에 답변이 없다면 투쟁의 길을 걷겠고, 강제 노역 반대 전단지를 인쇄해 대중에게 널리 배포하겠다."
그제야 프랫은 "언젠가 직접 와서 만나자"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에 발라브바이는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는가? 베가르를 부릴 수 있는 근거 법령이 있다면 그 사본을 보내달라. 아니면 프랫 씨가 내 사무실로 와서 직접 이야기하라"고 되받아쳤습니다. 프랫은 이 제안에도 끝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발라브바이는 처음에 예고한 대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베가르를 제공하지 말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인쇄해 각 마을마다 배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정부 관리들이 마을을 순회할 때마다 주민들은 강제 노역 제공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관리들이 마을 사람들을 함부로 부리던 베가르의 악습은 드디어 구자라트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