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밀 야차크(Kamil Jadczak)의 그림에 묘사된 베즈프림.
왕위 계승권을 잃은 첫째 아들
베즈프림(Bezprym, 986~1032)은 피아스트 왕조 출신의 폴란드 공작으로,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용맹공)가 헝가리 출신 귀족 여성과의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첫째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며, 그의 운명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추측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설에 따르면, 1000년 십 대였던 베즈프림은 아버지 볼레스와프와 독일 황제 오토 3세와 함께 아헨으로 향하는 여정에 동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황제의 조카인 리헤자(Richeza)와 약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에 머물렀는데, 아버지의 명령에 반해 은수 생활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이러한 불복종 행위, 그리고 볼레스와프의 다음 아내 에므닐다(Emnilda)의 설득까지 더해지면서, 권력은 베즈프림이 아닌 이복 동생 미에슈코 2세 람베르트(Mieszko II Lambert)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미에슈코 역시 1013년 앞서 언급된 리헤자와 결혼했다.
추방과 권력 장악
아버지가 사망한 후 베즈프림은 잠시 나라에 머물렀는데, 아마도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영지를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곧 미에슈코 2세 람베르트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후 그는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 쫓겨난 남동생 오토(Otto)의 도움을 받아 독일과 키예프 루스의 군주들과 연계를 맺었다.
1031년, 베즈프림은 무력 침공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 침공은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분할'로 평가될 만한 사건이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베즈프림은 폴란드 지배층의 상당 부분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몰수한 구 귀족들의 재산을 자신을 지원한 바이킹 전사들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짧은 통치와 몰락
그러나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베즈프림은 이듬해 초 궁정 신하 중 한 명에게 살해당해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짧은 통치는 볼레스와프 용맹공이 일구어낸 폴란드 강국의 역사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베즈프림 이후 나라는 쇠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불과 몇 년 뒤에는 새 공작 카지미에시(Kazimierz)마저 추방되면서 최고 권력은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