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지미에시 복원자, 알렉산데르 레셀 작.
카지미에시 1세 '복원자' — 피아스트 왕조의 재건 군주
출생과 가계
카지미에시 1세 복원자(Kazimierz I Odnowiciel, 1016~1058)는 피아스트 왕조 출신의 폴란드 공작으로, 미슈코 2세 람베르트 국왕과 독일 귀족 로렌의 리헨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문자 교육을 받았으나, 늦게 형성된 혼란스러운 전승과 달리 수도사로 양육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외동아들인 그는 103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권력을 물려받았지만, 초기 국정은 어머니 리헨차가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기 속의 즉위와 망명
그의 통치는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용감공)가 세웠던 판도가 무너지고, 아버지와 삼촌들 사이의 파괴적인 전쟁이 남긴 깊은 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귀족층의 지지도 얻지 못했는데, 이들은 상당 부분 베즈프림 공작이 최근 루테니아에서 데려온 신흥 가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안정한 입지 속에서 그는 점차 나라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갔고, 1037년에는 왕위를 내려놓고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헝가리에서는 사실상 포로 신세로 지냈으며, 그곳 군주가 사망하자 독일로 향해 어머니나 쾰른 대주교인 외삼촌의 영지에서 머물렀다. 이후 1039년경 어머니 리헨차와 독일 친척들이 제공한 군대의 도움을 받아 귀국, 황폐해진 영토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귀환과 국가 재통합
그의 통치 기간은 황폐해진 나라를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험난한 투쟁에 바쳐졌다. 그네즈노와 포즈난이 파괴된 상황을 감안해 공작의 주 거처를 크라쿠프로 옮긴 것도 바로 그였다. 1047년에는 아버지 대의 신하였다가 스스로 공작을 자칭하던 미에츠와프를 상대로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자신의 부재 중 폴란드를 대규모로 침공했던 체코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할아버지의 가장 큰 적수 중 한 명이었던 키예프 루스의 야로슬라프 현공(무드리)과 뜻밖의 동맹을 맺으며 폴란드의 위상을 안정시켰다.
혼인과 역사적 평가
그의 아내는 루테니아 공녀 마리아 도브로네가였다. 이 혼인을 통해 두 아들을 두었는데, 훗날 각각 폴란드의 통치자가 되는 볼레스와프 2세(용맹공)와 브와디스와프 1세 헤르만이 바로 그들이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폴란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작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