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첼로 바치아렐리가 그린 헝가리의 루이 초상화.
안주 왕조의 젊은 계승자
헝가리의 루이(1326~1382)는 안주의 루이, 혹은 '대루이(Louis the Great)'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인물로, 헝가리와 폴란드 두 왕국을 통치했다. 그는 안주 왕조 최초의 헝가리 국왕인 카롤 로베르트와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 출신의 왕비 엘지비에타 워키에트쿠프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어머니의 세심한 보호 아래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스승들에게 배우며 폭넓은 교육을 받았고, 1342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헝가리 왕위에 올랐다.
유럽을 떨게 한 정복 전쟁
루이는 헝가리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국왕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거의 매년 이웃 나라들을 향해 군사 원정을 감행했으며, 특히 나폴리 왕국을 상대로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원정을 벌였다. 그는 달마티아를 정복했고, 몰다비아·왈라키아·보스니아, 그리고 불가리아의 일부 지역에 대한 패권을 확립하며 헝가리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다.
폴란드 왕관으로 이어진 모후의 역할
루이의 통치에는 왕태후 엘지비에타 워키에트쿠프나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루이는 1370년에 사망한 폴란드의 대카지미에시(카지미에시 3세)로부터 폴란드 왕국의 왕관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보스니아의 엘리자베트와 결혼한 그에게는 아들이 없이 딸들만 있었고, 그는 딸들—그중 막내인 야드비가도 포함하여—을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양국에서 상반된 평가
루이는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폴란드에서는 그의 기억이 차갑다. 주된 이유는 코시체 특권 때문이다. 이 특권은 귀족 신분의 우위와 왕권 약화의 시초로 잘못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의 왕, 그리고 말년
폴란드 왕관을 수용한 이후에도 루이는 비스와 강 유역, 즉 폴란드 본토 방문을 꺼렸는데, 표면적으로는 이곳의 혹독한 기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인 통치 권력은 섭정 엘지비에타 워키에트쿠프나가 대행했으며, 이후에는 브와디스와프 오폴치크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루이는 오랫동안 앓아온, 아마도 유전성 질환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