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메리 클라리사 밀러, 즉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는 영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입니다. '범죄의 여왕(Queen of Crime)'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녀는 추리 장르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어린 시절과 첫 추리소설 도전
1890년 9월 15일, 잉글랜드 남부의 해안 도시 토키에서 영국인 어머니 클라리스 마거릿 보머와 미국인 중개상 아버지 프레더릭 알바 밀러 사이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오빠와 언니는 기숙학교에 보내졌지만 그녀만은 집에서 부모와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고, 어린 시절부터 시와 이야기를 쓰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1902년 토키의 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파리에서 수학을 마쳤습니다. 예술가의 꿈을 품고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으나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아 무대에 서는 길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1910년에는 어머니와 함께 이집트에서 몇 달을 머물렀고, 귀국 후에는 희곡 창작과 연출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한 단편들을 여러 잡지에 투고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추리소설 쓰기에 내기를 걸었고, 애거서는 카이로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원고 역시 거절당했지만, 가족의 친구였던 작가 에든 필포츠는 그녀에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쓰라고 격려했습니다.
간호사, 약제 보조원, 그리고 에르퀼 푸아로의 탄생
1912년 무도회에서 비행사 아치볼드 크리스티를 만나 약혼했고, 1914년 성탄절에 결혼했습니다. 1919년에는 딸을 낳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자원간호사로 일했고, 이후 약국 보조원으로 근무하며 독극물과 의약품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녀의 소설에 소재로 고스란히 활용되었습니다.
여가 시간에 집필한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는 그녀의 대표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처음 등장합니다. 1920년 드디어 원고를 받아들인 출판사를 찾았고, 여섯 권의 소설을 출판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정식 데뷔하게 됩니다.
1926년, 미스터리한 실종과 화려한 귀환
1926년은 애거서에게 가장 힘든 해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가 겹친 가운데 그녀는 며칠간 행방불명되었고, 경찰이 열흘 넘게 수색한 끝에 호텔에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이 실종 사건에 대해 끝까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으며, 1928년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같은 시기 발표된 일곱 번째 소설 『로저 아크로이드 살인사건』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그녀를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이후 그녀는 매년 한두 권씩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 이 두 명의 상징적인 탐정을 둘러싼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갔습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사랑, 고고학자와의 결혼
1930년 중동 여행 중 고고학자 맥스 말로언을 만나 같은 해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시리아·이라크 발굴 현장을 함께 다녔고, 이 지역은 훗날 『나일강의 죽음』 등 여러 소설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1938년 부부는 잉글랜드로 이주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런던의 병원에서 약제 보조원으로 일하며 독극물에 대한 지식을 한층 더 깊이 다졌습니다. 1955년에는 자신의 저작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애거서 크리스티 리미티드(ACL)'를 설립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
1975년과 1976년, 그녀는 각각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이 마지막으로 풀어낸 사건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며 두 탐정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1976년 1월 12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이자 가장 널리 읽힌 작가 중 하나로, 지금도 매년 약 400만 부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장편소설 66편, 단편소설 154편, 희곡 20편, 자서전과 시를 남긴 그녀가 추리 장르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며, 그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