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발루아의 샤를(1270~1325): 야망에 가득 찬 프랑스 왕자, 발루아 왕조의 시조

발루아의 샤를은 누구인가?

발루아의 샤를(1270~1325): 야망에 가득 찬 프랑스 왕자, 발루아 왕조의 시조

발루아의 샤르르(Charles de Valois)는 '용왕'이라 불린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와 아라곤의 이사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입니다. 그의 가장 큰 의의는 훗날 백년전쟁을 열게 되는 발루아 왕조의 첫 국왕 필리프 6세의 아버지였다는 점입니다. 즉, 카페 왕조의 직계가 끊어진 뒤 프랑스를 통치하게 될 새로운 왕통의 문을 열어준 인물이 바로 샤르르 자신이었던 셈입니다.

끝없는 야망과 영토 수집

샤르르는 지적인 면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나칠 정도의 야망과 탐욕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여러 공국과 백작령을 하나씩 거두어들였는데, 이 때문에 당대 사람들은 그를 '영토 수집가'처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야망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1280년 교황으로부터 아라곤 왕위를 인정받은 일입니다. 교황은 그를 성좌의 봉신(vassal)으로서 아라곤의 왕으로 승인해 주었지만, 이후 벌어진 '시칠리아 만종(Vêpres siciliennes)' 사건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결국 아라곤 왕위를 내려놓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꿈꾸던 왕관이 손에 넣기 직전 무너진 순간이었던 셈입니다.

탁월한 전장 지휘관

정치적 야심만큼이나 샤르르에게 인정받은 능력은 군사 재능이었습니다. 그는 1297년 플랑드르 원정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하며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유능한 전장의 지휘관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제왕의 꿈

샤르르의 마음속에는 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관관이라는 더 큰 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야망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카페 왕조 직계의 마지막 국왕들이 통치하던 시기 동안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막후 실권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비록 스스로 왕관을 쓰지는 못했지만, 그의 아들 필리프 6세가 발루아 왕조를 개창하면서 샤르르의 혈통은 프랑스 왕실로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좌절이 많았던 삶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프랑스 왕조사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