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첼로 바치아렐리가 그린 야드비가 여왕의 초상화.
야드비가 안데가벤스카(Jadwiga Andegaweńska)
안주 왕조 출신의 폴란드 군주로, 폴란드 역사상 최초로 '여왕'이 아닌 '왕'으로 대관식을 거행한 여성이다. 그녀는 1374년 2월 중순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시 남아 있는 기록에는 정확한 출생 사실이 전해지지 않는다. 헝가리 왕 러요시 1세(루이 드 앙주)와 보스니아 출신 왕비 엘리자베타 사이에서 세 번째 딸이자 마지막 자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탄생에는 커다란 기대가 걸려 있었다. 부모는 아들이 태어나 왕위 계승자가 되어 왕조가 단절의 위기를 모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 것은 딸이었고, 아버지 러요시 국왕과 영향력 있는 할머니인 선대 왕비 엘리자베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러요시가 통치하던 왕국들이 딸들에게도 상속될 수 있도록 계승 규칙을 변경한 것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야드비가를 장차 헝가리의 여왕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따라 소녀는 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 폰 합스부르크와 약혼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왕이 서거하자 어머니는 오히려 야드비가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폴란드와 헝가리의 왕위를 모두 나이 많은 언니 마리아에게 넘기려 했다. 이 계획은 크라쿠프에 상주하며 폴란드를 다스릴 별도의 군주를 요구한 폴란드 귀족들의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길고 격동적인 왕위 공백기 끝에 야드비가는 1384년 늦여름 비스와 강변의 크라쿠프에 도착했고, 같은 해 10월 16일 '왕'으로서 대관식을 올렸다.
1386년 2월, 그녀는 새로 세례를 받은 리투아니아 대공 야기에우워와 결혼했다. 이후 그녀는 정치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튜턴 기사단 총장과의 협상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학문의 후원자이자 열렬한 애서가였으며, 지극히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인물이었다. 교황청과 활발히 소통하며 크라쿠프 대학교(훗날의 야기에우워 대학교) 재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은 짧게 끝났다. 1399년 7월 17일, 유일한 딸 엘리자베타 보니파치아가 세상을 떠난 지 나흘 만에, 출산 후 불과 넉 주도 지나지 않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의 업적과 신앙을 기리기 위해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