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타리나 폰 합스부르크(Katarzyna Habsburżanka, 사진: 퍼블릭 도메인)
합스부르크의 카타리나(1533~1572)
카타리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야기에워왕조 출신의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아내였다. 그녀는 1533년 빈에서 태어났으며, 열여섯 살이던 해에 만토바 공작 프란체스코 3세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550년, 남편이 호수에서 익사하는 비극을 겪으며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이후 카타리나는 아버지의 궁정으로 돌아갔다.
3년 뒤, 폴란드 의회 대표단이 역시 홀아비가 된 지그문트 아우구스트의 새 왕비를 물색하기 위해 빈을 찾았다. 대표단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 왕비 바르바라 라지비우부나의 친척도 동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먼 친족 관계였고, 게다가 폴란드 국왕의 첫 번째 왕비가 카타리나의 언니 엘주비타였기 때문에 이 혼인을 성사시키려면 교황의 특별 허가가 필요했다. 다행히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결혼식은 1553년 7월 29일 크라쿠프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나 소문에 따르면 신부는 첫날밤에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1년 후 카타리나는 임신을 선언했고 의사도 이를 확인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식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이 일은 폴란드 귀족들이 왕비에게 품은 커다란 반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시어머니 보나 스포르차가 며느리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
더군다나 카타리나의 건강마저 점점 나빠지면서 부부 사이는 사실상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고,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는 아내와 이혼하려 하기까지 했다. 결국 카타리나는 폴란드를 떠나 린츠의 수녀원에 정착하여 남은 생을 보냈다. 그녀는 1572년 2월 28일 세상을 떠났으며,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귀중품들을 국왕의 누이들인 안나와 카타리나에게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