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7년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침공했을 때, 사르다르 파텔(Sardar Patel)은 즉시 군대를 파견해 카슈미르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와 마운트배튼(Mountbatten) 총독은 "카슈미르 왕이 인도 편입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 전까지는 인도군을 카슈미르에 보낼 수 없다"며 이에 반대했습니다. 이에 파텔은 최소한이라도 스리나가르와 바라물라 고개를 지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철저한 군사 준비
파텔은 국방장관 발데브 싱(Baldev Singh)과 긴밀히 협의하여, 카슈미르 국경에 인접한 인도 영토 내에 병력을 배치해 전쟁 지역으로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아울러 스리나가르에서 파탄코트(Pathankot)까지 이어지는 도로 건설도 추진하여 보급로를 확보했습니다.
유엔 회부라는 선택
사르다르 파텔은 이 문제를 유엔(UNO)에 회부하는 것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마운트배튼의 조언에 따라 네루는 문제를 유엔에 가져갔습니다. 1948년 1월 1일, 인도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인도의 일부인 카슈미르가 무장 부족민들에게 침입당했으며, 파키스탄이 직접적·간접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정식 항소했습니다.
인도는 부족민들의 침입이 국제 평화와 질서를 위협한다며, 파키스탄이 군대를 철수하고 부족민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해야 하며, 파키스탄의 이러한 행위는 인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파키스탄의 반박과 안보리의 개입
1948년 1월 15일, 파키스탄은 인도의 주장을 일축하고 오히려 인도를 비난하며, 잠무-카슈미르의 인도 편입은 위헌적이므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안전보장이사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5개국 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지 상황을 직접 관찰하며 타협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휴전 합의와 좌초된 국민투표
유엔 위원회는 카슈미르에 방문해 현지를 조사했고, 1948년 8월 13일 양측에 전쟁 중지와 타협을 위한 여러 제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두고 양측 간의 긴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1949년 1월 1일 양측은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또한 카슈미르의 최종 귀속은 국민투표(plebiscite)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출신의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가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지만, 파키스탄이 합의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국민투표는 끝내 실시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니미츠는 직책에서 사임했습니다. 카슈미르 문제는 유엔에 회부되면서 오히려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고, 이에 대해 사르다르 파텔은 자와할랄 네루에게 크게 분노했습니다.
장기화된 갈등
이후 1965년에는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다시 한번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카슈미르의 상당 부분이 파키스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카슈미르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파키스탄의 통제 하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