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드비카 마리아 곤자가(Ludwika Maria Gonzaga)
두 폴란드 국왕의 아내가 된 인물
루드비카 마리아 곤자가(1611~1667)는 폴란드의 왕비로, 먼저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Władysław IV Waza)와 결혼했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얀 카지미에시 바사(Jan Kazimierz Waza)와 재혼했습니다. 폴란드 역사상 유일하게 두 명의 집권 군주, 그것도 친형제와 차례로 결혼한 인물입니다.
명문 곤자가 가문의 프랑스 귀족
그녀는 프랑스의 고귀한 가문 출신 귀족으로, 1637년부터 부르고뉴 지방의 네베르(Nevers)를 비롯해 곤자가 가문의 여러 영지를 다스렸습니다.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4세와의 혼담은 파리 궁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자랭 추기경이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결혼식은 1646년 거행되었습니다.
왕비 시절 그녀는 남편 곁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된 역할만 수행했지만, 남편이 예기치 않게 요절하자 신속하게 그의 동생이자 새 국왕인 얀 카지미에시와 재혼하며 정치적 입지를 이어갔습니다.
스웨덴 침공기의 정치적 활약
그녀는 스웨덴의 침공(대홍수 시대) 이전과 침공 기간 내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 인물입니다. 특히 유명한 리비우 서약의 주역이었는데, 이 서약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나라 전체를 하느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보호 아래 맡긴다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1656년에는 스웨덴에 대항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가문과 동맹을 체결하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친프랑스파 육성과 왕위 계승 개입
그녀는 폴란드 궁정 안에 강력한 친프랑스파를 구축했으며, 얀 카지미에시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프랑스 출신 앙리 당기앵(Henri d'Enghien)을 밀어붙였으나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죽음과 국왕의 퇴위
166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국왕 얀 카지미에시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고, 이는 그가 왕관을 반납하고 퇴위를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