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트는 누구인가?
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트(1526~1545)는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1세의 딸이자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첫 번째 아내입니다. 그녀는 페르디난트 1세와 야기에우워 가문의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태어난 순간부터 폴란드 왕자 지그문트 아우구스트와의 혼인을 전제로 운명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네 살에 시작된 정략혼담
첫 혼약 문서는 엘리자베트가 겨우 네 살이던 해에 체결되었습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정작 훗날 시집갈 나라의 언어인 폴란드어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1536년, 열 살이 되던 해에 야기에우워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 간의 공식 약혼식이 대리인을 통해 거행되었고, 엘리자베트가 훗날의 남편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를 처음으로 실제로 마주한 것은 무려 7년 후였습니다.
크라쿠프에서의 결혼과 대관식
미래의 왕비는 1543년 4월 21일 크라쿠프에 도착했고, 두 주 뒤에 결혼식과 함께 폴란드 왕비로서의 대관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의식은 그녀에게 영광이 아니라 고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시어머니 보나 스포르차의 박해
결혼 생활은 엘리자베트에게 굴욕과 괴롭힘의 연속이었고, 그 이면에는 시어머니 보나 스포르차가 있었습니다. 젊은 왕비의 수행원들은 하나같이 쫓겨났고, 보나는 며느리의 궁정을 직접 관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편 지그문트 아우구스트 역시 아내를 몹시 싫어했는데, 그 원인은 신혼 첫날밤에 드러난 엘리자베트의 간질 발작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결혼 전까지 야기에우워 가문은 왕위 계승자의 탄생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이 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버려진 왕비의 마지막 나날
남편과 시어머니는 엘리자베트를 매사에 모욕했고, 심지어 보나가 며느리를 독살하려 한다는 의심까지 제기되었습니다. 수도에 페스트가 돌자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는 병든 아내와 어머니를 두고 빌뉴스로 떠났고, 그곳에서 바르바라 라지비우프나와 불륜 관계에 빠졌습니다.
딸의 처지를 알게 된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는 지참금 지급 조건에 부부의 동거를 명시했습니다. 당시 젊은 부부는 여러 주씩 서로 얼굴조차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엘리자베트는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를 따라 리투아니아로 떠났지만, 현지의 혹독한 기후는 그녀의 건강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1545년, 왕이 아내의 지참금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엘리자베트는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빌뉴스 대성당의 성 카지미에시 예배당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