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로마 황제 네로(37-68): 권력, 대화재, 그리고 비극적 최후

네로(Nero): 로마 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

네로(서기 37년 12월 15일생)는 양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사망한 서기 54년, 고대 로마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였던 소(小)아그리피나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철학자 소(小)세네카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즉위 초기 네로는 원로원과 집정관에게 권한을 되돌려주는 온건한 통치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강한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스승 세네카와 근위대장 아프라니우스 부루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어머니 아그리피나와의 갈등

이후 아그리피나는 국정 운영을 둘러싼 의견 차이와 더불어, 아들의 정부(情婦)였던 악테 문제로 인해 네로와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습니다. 아그리피나가 자신이 권력을 찬탈해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그의 누이 옥타비아는 네로와 결혼한 상태였다)를 옹립하겠다고 밝히자, 그녀는 궁궐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어 네로는 서기 55년 브리타니쿠스가 독살당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59년에는 세네카와 부루스의 동의 아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살해를 명령했습니다. 당시 공식 발표는 '황제 네로가 음모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내용이었지만, 실상은 모자 간의 권력 다툼이 낳은 비극이었습니다.

포파이아와 폭압적인 결혼 생활

네로의 다음 연인은 포파이아 사비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마르쿠스 살비니우스 오토는 루시타니아 총독으로 좌천되어 멀리 보내졌습니다. 서기 62년 네로는 아내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포파이아와 재혼했습니다. 옥타비아는 추방당한 뒤 간통죄를 뒤집어씌워져 살해당했습니다. 그러나 65년에는 네로가 임신 중이던 포파이아를 구타하는 바람에 그녀 역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서기 64년 7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대화재는 로마의 상당 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안티움에 머물고 있던 네로는 현장으로 돌아와 구호 활동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황제 자신이 도시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화재의 책임은 기독교인들에게 돌려졌고, 이들 다수는 황제의 경기장에서 참수형 등 처형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란과 자결로 끝난 통치

서기 68년, 갈리아 루구두넨시스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가 네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에 히스파니아 총독 갈바가 가담했고, 원로원은 갈바를 새 황제로 공식 승인했습니다. 공적(公敵)으로 선언된 네로는 6월 9일 "어찌 이토록 뛰어난 예술가가 나와 함께 사라지는가!"라는 말을 남긴 채 자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로써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