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두스(Commodus)

코모두스는 서기 180년에 즉위한 고대 로마의 황제입니다. 그는 '철인'이라 불리는 현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황후 파우스티나 사이에서 161년 8월 31일에 태어난 아들로, 안토니누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룬 권력의 정점
코모두스는 아버지의 총애 속에서 특유의 빠른 경력을 쌓았습니다. 176년부터 177년 사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를 호민관(트리부누스), 공동 통치자, 집정관, 그리고 최고 사제로 임명하며 후계자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나 180년 3월 17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게르만족과의 전쟁 원정 중 오늘날 빈 근교에 위치한 군영 빈도보나(Vindobona)에서 유행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써 18세의 코모두스가 제국의 최고 권력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저버린 결정
즉위하자마자 코모두스는 아버지의 유언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다뉴브 강 유역에서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을 상대로 힘겹게 얻어낸 정복지를 모두 포기하고 철수한 것입니다. 이는 코모두스가 군사적 영광보다 개인적 안락을 우선시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즉위 초기 코모두스는 직접 통치에 나서지 않고 사치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국정은 근위대장 페렌니스(Perennis)가 실질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음모와 공포 정치
182년, 코모두스 암살 음모가 발각되었습니다. 배후에는 황제의 누이 루킬라(Lucilla)가 있었는데, 그는 황후의 지위를 질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처형당했고, 루킬라 역시 이후 살해되었습니다. 한편 황후 크리스피나(Crispina)도 뒤이어 사망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루킬라의 음모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암살 미수 사건이었습니다. 단검을 든 자객이 코모두스에게 달려들며 "이것이 원로원이 황제께 보내는 선물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코모두스에게 깊은 강박관념을 남겼고, 이후 수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반역 혐의로 재판을 받거나 강제로 자결해야 하는 공포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페렌니스의 후임으로 근위대장이 된 클레안데르(Cleander) 시대에는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관직이 돈으로 거래되는 등 국정이 극도로 부패해 갔습니다.
'헤라클레스의 화신'을 자처한 황제
과거 칼리굴라처럼 코모두스도 점차 제정신을 잃어간 듯 보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화신이라 여겼고, 곤봉과 사자 가죽을 든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수많은 조각상을 제작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검투 경기에 직접 참가하여 자신의 '무용담'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로마라는 도시의 이름조차 '콜로니아 코모디아나(Colonia Commodiana)'로 바꾸라고 명령할 만큼 자신을 신격화했습니다.
비극으로 끝난 최후
코모두스의 광기에 지친 주변 인물들은 마침내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192년 12월 31일 밤부터 193년 1월 1일 새벽 사이, 코모두스는 암살당했습니다.
음모에는 정부 마르키아(Marcia)와 당시 근위대장 아일리우스 라이투스(Aemilius Laetus)가 가담했습니다. 먼저 독약을 사용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장사 나르키소스(Narcissus)가 황제를 목졸라 죽였습니다.
코모두스의 죽음으로 안토니누스 왕조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페르티낙스(Pertinax)가 황제로 옹립되었지만, 로마는 곧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