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정치가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를 역임하며 약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한 인물입니다. 그의 인생은 부유한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 혁명가, 그리고 오랜 기간 권력을 쥔 지도자로 이어지는 극적인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초년 시절과 법학 공부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13일 쿠바 동부 비란(Birán)에서 사탕수수 재배업으로 번창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직접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며 자랐고, 여섯 살 무렵부터는 형제들과 함께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졸업했지만, 그는 곧바로 쿠바 혁명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혁명가로서의 첫걸음
카스트로는 쿠데타로 집권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장군에게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1953년에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산티아고데쿠바의 몽카다 병영 습격을 주도했으나 실패하여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1955년 특사로 석방된 후 멕시코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운명적인 동맹을 맺습니다. 같은 시기 그는 '7월 26일 운동'을 창설하며 혁명 조직의 지도자로 나섰습니다.
쿠바 혁명의 성공
1956년 카스트로는 귀국하여 군사 정권 타도에 나섰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차례 패배를 겪었지만, 혁명 세력은 점차 확장되었고 1958년에는 이미 쿠바 국민의 80% 이상이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미국마저 바티스타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면서, 1958년 말부터 1959년 초에 걸쳐 혁명군은 마침내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의 부대는 산티아고데쿠바에 입성했고, 이미 섬을 떠난 상태였던 바티스타를 대신해 카스트로는 1월 8일 하바나에 도착했습니다.
독재자로서의 통치
정권을 장악한 카스트로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요직을 채우고 스스로 수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소련과의 우호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했으며, 이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이 지원한 악명 높은 피그만 침공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1962년에는 소련제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면서 세계를 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은 소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카스트로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쿠바를 계속 통치하며 반대 세력의 활동을 억눌렀고, 쿠바 경제는 점점 더 깊은 파탄에 빠져들었습니다. 고령과 건강 악화 속에서 2006년에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정부의 실권을 넘겨받았으며, 피델 카스트로는 2016년 하바나에서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