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젊은 순교자 안네 프랑크: 나치의 어둠 속에 빛난 15년의 삶

안넬리스 마리 프랑크(Annelies Marie Frank, 1929~1945), 흔히 '안네 프랑크'로 알려진 그녀는 가족이 나치즘을 피해 은신하며 보낸 나날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남긴 인물입니다. 독일로 강제 이송된 안네는 독일 항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요절했지만, 그녀가 남긴 기록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경각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으로의 이주

안네는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디트 프랑크-홀렌더와 오토 하인리히 프랑크 부부의 둘째 딸로, 가족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안네'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개혁파 유대인이었던 부모는 안네와 언니 마고트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와 학습을 장려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1933년 나치당이 프랑크푸르트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반유대주의 시위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가족의 안전을 걱정한 에디트는 두 딸을 데리고 독일 아헨으로 피신했고, 오토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먼저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34년 2월, 나머지 가족들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고, 두 자매는 그곳에서 다시 학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비밀집(아흐터하위스)'이라는 은신처

두 자매는 모두 학업에 재능이 뛰어났고, 특히 안네는 독서와 글쓰기에서 남다른 소질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차별 법령이 시행되면서 자매는 기존 학교를 떠나 유대인 중학교로 전학을 강요당했습니다.

1942년 6월 12일,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안네는 노트 한 권을 선물받았고, 이를 일기장으로 삼아 자신의 삶, 가족, 친구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여학생의 일상 묘사 사이사이에 유대인 공동체가 겪는 갖가지 제약과 박해에 대한 언급도 조용히 녹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주 뒤인 7월 5일, 언니 마고트에게 유대인 이민 중앙국의 동원 통지서가 도착했습니다. 노동수용소로 보내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은 미리 만전을 기해 왔고, 다음 날 프랑크 가족은 집을 급하게 떠난 것처럼 어수선하게 남겨둔 채 '스위스로 갔다'는 쪽지를 남기고 은신처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오토의 회사 사무실 위와 뒤편에 있는 비밀 공간, 이른바 '비밀집(Achterhuis)'이었습니다. 오토, 에디트, 할머니, 마고트, 안네 다섯 식구의 숨겨진 생활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은신처에서의 생활

오토의 직원 몇몇 — 빅터 쿠글러, 요하네스 클레이만, 미프 히스, 베프 포스퀴일 — 는 프랑크 가족의 은신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목숨을 걸고 그들의 필요를 챙겼습니다. 안네는 일기에서 이들의 헌신과 그들이 감수한 위험을 진심으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은신 생활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다른 직원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발소리조차 내지 않아야 했습니다. 1942년 7월 13일에는 반 펠스 가족 — 부부와 열여섯 살 아들 페터 — 이 합류했고, 11월에는 가족의 친구 한 사람이 더 들어왔습니다. 좁은 공간에 여덟 명이 함께 살게 되면서 거주자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안네는 언니 마고트와 더 가까워졌고, 페터와는 서로 사랑에 빠지며 성장해 갔습니다.

안네는 독서와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일기에는 은신자들의 일상,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두려움, 신념까지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1944년 봄, 네덜란드 망명 정부 교육부 장관이 전후에 네덜란드 국민이 겪은 고통에 대한 회고록을 출판하겠다고 방송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안네는, 자신의 일기를 출간용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발각과 강제 이송

1944년 8월 4일 아침, 익명의 밀고 혹은 우연히 벌어진 수색 과정에서 프랑크 가족의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거주자 전원이 체포되었습니다. 같은 해 9월 3일, 그들은 수용소를 거쳐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어 사흘 만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비밀집 거주자 누구도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지지는 않았습니다.

에디트, 안네, 마고트는 같은 막사에 배정되어 낮에는 종일 강제 노동을 하고 밤에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 갇혀 지냈습니다. 1944년 10월 28일, 안네와 마고트는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져 헌 신발을 분류·재생하는 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수용소는 극도로 과밀했고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도 매우 높았습니다.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의 겨울은 혹독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안네와 마고트는 병들었고 식량을 자주 빼앗겼으며, 일어설 힘조차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3월, 발진티푸스 유행병으로 17,000명의 수용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 사이 마고트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안네는 언니를 단 며칠 뒤 따라갔습니다. 베르겐벨젠 수용소가 해방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1945년 4월 15일이었습니다.

『안네의 일기』, 영원한 증언

비밀집에 숨어 있던 여덟 명 중 전쟁을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은 오토 프랑크였습니다. 그는 옛 직원 미프 히스 덕분에 딸의 일기를 되찾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안네의 뜻을 헤아려 역사가에게 원고를 맡겨 출판을 의뢰했습니다. 일기는 1947년 처음 세상에 나왔으며, 오늘날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점령기의 참상을 전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증언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