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에버하르트 페히너: 심연과 일상의 연대기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버하르트 페히너(Eberhard Fechner). 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 재판을 다룬 그의 다큐멘터리 『재판(Der Prozess)』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페히너는 30년 전인 1992년 8월 7일 함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페히너의 여정

1926년 10월 21일 실레지아의 리크니츠(현 폴란드 레그니차)에서 태어난 페히너는 1947년 베를린에서 젊은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10년 동안 독일 연극 무대에서 2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이자 연출가로 극장 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점차 텔레비전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갔다. 1965년 NDR(북독일방송)의 편집 조수로 입사한 그해, 당시 NDR 텔레비전 국장이었던 에곤 몽크(Egon Monk)는 그를 영화 『어느 날 - 독일 강제수용소 보고서』의 배우로 기용했다.

『클라라 하이데브레크에 대한 추도사』: 수상한 데뷔작

1969년, 페히너는 NDR에서 방영된 첫 TV 다큐멘터리 『클라라 하이데브레크에 대한 추도사(Nachrede auf Klara Heydebreck)』로 텔레비전 감독으로서의 조기 전성기를 맞이했다. 72세 베를린 여성의 자살 소식을 접한 페히너는 그녀의 삶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남겨진 문서, 공적 기록, 이웃과 친척의 증언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인물의 인격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평범한 삶의 디테일에 귀 기울이는 태도는 허무하게 느껴진 한 인생의 고통스러운 초상을 그려냈다. "그들의 운명이 독특하듯, 모든 인간의 운명은 각기 다르고 독특하다"고 페히너는 자신의 첫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아돌프 그림메 상(Adolf Grimme Prize)을 수상했다.

마이다네크의 나치 범죄: 법정에 선 노년의 가해자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루블린-마이다네크에는 강제수용소이자 절멸수용소가 있었고, 연구에 따르면 수만 명의 사람이 이곳에서 살해됐다. 루블린에서 전 SS 대원과 수용소 직원들에 대한 두 차례 재판이 열린 뒤, 세 번째 재판이 1975년 뒤셀도르프에서 시작됐다. 이 재판은 6년 만인 1981년에야 종결됐는데, 피고인들에게 종신형 1명, 징역 3년 6개월에서 12년형 3명, 그리고 다수의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많은 관찰자들은 판결을 냉담하게 받아들였다. 사회비평가이자 문학평론가인 발터 뵐리히(Walter Boehlich)는 "우리의 사법부는 25만 명의 피살자에 대해 단 8명만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WDR의 재판 관찰자이자 논평가인 하이너 리히텐슈타인(Heiner Lichtenstein)은 오늘날, 홀로코스트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지금 더욱 시급한 또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피고인과 증인의 고령화로 인해 이러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1975년 재판 개시 시점에도 이미 15년 동안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범죄는 30년 전 일이었다.

『재판』을 위한 수년간의 탐구

페히너는 루블린-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 뒤셀도르프 재판을 다룬 다큐멘터리 『재판』을 위해 수년간 증인, 피의자, 재판 관찰자, 검사, 판사, 변호인을 인터뷰하고 촬영했다. 약 260시간 분량의 촬영 원본에서 그는 3년간의 편집 작업을 거쳐 하나의 가상적 대화를 구성했다. 이는 논쟁을 넘어, 모든 관점을 통해 일어난 일의 터무니없이 인간적인 차원을 가시화한다. 3부작 다큐멘터리 『재판 - 뒤셀도르프 마이다네크 재판의 재현』의 제1부 "기소"가 1984년 NDR에서 처음 방영됐다.

페히너의 영화: 망각에 맞선 인간적 호소

나치 범죄 재판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있어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 속에서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를테면 1944년까지 마이다네크 수용소 주변 채소밭에서 인회(人灰)로 비옥해진 토양 덕분에 거대한 양배추 머리들이 자라났고, 그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쇠약해진 수감자들이 운반할 수 없었다는 증언 같은 것들이다. 마이다네크의 범죄 수사가 비교적 가벼운 형량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에버하르트 페히너의 공로이기도 하다. 『재판』은 망각에 맞선 깊이 있는 인간적 호소이자, 동시에 기억의 보증서다.

『코미디언 하모니스트』에서 『반 사진』까지: 다양한 기록

국제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6인조 보컬 앙상블 "코미디언 하모니스트(Comedian Harmonists)" - "주말과 햇살", "베로니카, 봄이 왔네!" 같은 곡으로 알려진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언 하모니스트 - 여섯 개의 이력서』(1976)에서 페히너는 이 그룹의 무대 뒤 독특한 면모를 조명했다. 1933년 이후 해리 프롬만, 에리히 A. 콜린, 로만 치코프스키 등 유대인 단원들이 나치에 의해 공연 금지, 직업 금지 조치를 당하면서 그룹은 해체됐고, 유대인 단원들은 망명길에 올랐다. 그들의 이후 운명과 나치 이데올로기에 따른 '아리아인' 단원 3명의 운명은 그 시대 수많은 예술가의 경험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돌프 그림메 상을 수상한 『반 사진 - 독일 시민들의 기억』에서는 1933년 고등학교 동창 12명을 40년 만에 찾아 그들의 삶을 추적한다. 전 SA 대원부터 유대인 이민자까지. 그들의 증언은 일반 대중이 나치즘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처리했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나치 시대를 하찮게 여기고, 나치 독재의 잔혹 행위를 억압하며, 그들 세대의 다면적인 집단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가시화하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페히너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그들의 개인적 운명, 그리고 무명인들의 시선에서 본 역사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이들을 깊은 관심과 존중, 인내로 대하며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심지어 불쾌하고 억압됐던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페히너의 영화는 독일 사회가 나치 시대와 전후 시기에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발터 켐포프스키(Walter Kempowski)는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 기고에서 페히너가 자신의 저서 『타델뢰저 & 볼프』와 『독일 연대기』를 영화화한 작업을 언급하며 "상대방으로부터 가장 내밀한 정보를 끌어내는 그의 기술이, 결코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정점에 달했다"고 평했다. 크누트 히케티어(Knut Hickethier)는 <타츠(taz)>에서 "인내심 어린 주의로 사람들로 하여금 카메라 앞에서 말하게 만드는 페히너의 방법"을 높이 평가했다.

독창적 편집 스타일: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페히너는 NDR 텔레비전 드라마 부서에서 감독 겸 작가로 일했다. 편집자 브리기테 키르셰(Brigitte Kirsche)와 함께 그는 혁신적인 편집 스타일을 개발했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편집자다"라고 페히너는 자신의 감독관을 설명한 바 있다.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권위. 편집자 브리기테 키르셰(1923~2017)와 함께 그는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화의 새로운 형식"이라 부를 만한 독창적인 몽타주 스타일을 확립했다. 페히너는 몽타주를 통해 인터뷰이들을 "상상의 원탁" 주변에 모아 그들이 대화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로써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이 충돌하고, 한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 명확해진다. 페히너의 몽타주 스타일은 오늘날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여전히 중요한 양식적 수단으로 쓰인다.

서사 영화: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했다

페히너는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서사 영화(Erzählfilm)라 불렀다. 1990년 제작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늑대 아이들(Wolfskinder)』이 이러한 서사 영화의 마지막 작품이다. 동프로이센 피란민 가족이 도망길에 흩어졌다가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이자, 이들을 도운 리투아니아 농부들의 기꺼운 도움에 바치는 헌사다. 이를 통해 페히너는 자신의 고향 지역에 영화적 기념비를 세웠다.

"작은 사람들"을 향한 시선의 텔레비전 드라마

페히너는 오락 장르 역시 기교 있고 깊이 있게 다뤘다. 헬가 페데르센(Helga Feddersen)과 에블린 하만(Evelyn Hamann)이 출연한 텔레비전 영화 『엘베에서 네 시간 1(Four Hours from Elbe 1)』은 올바른 여성을 찾는 선원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사람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1970년작 『조수(Gezeiten)』는 클라우스 회네(Klaus Höhne)와 바딤 글로브나(Vadim Glowna)가 출연해 선원의 세계에 머무르는 일종의 속편 격이다. 그가 연출한 또 다른 텔레비전 드라마 고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성 4중주(Women's Quartet)』(1969)로, 사기 행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네 노자매의 이야기다. 1971년 <강력반(Tatort)> 에피소드 『프랑크푸르트의 금(Frankfurter Gold)』의 각본도 썼다.

서거 30주기 NDR 회고전

감독이자 배우로 40년간 활동한 페히너는 클라우스 빌덴한(Klaus Wildenhahn), 게오르크 슈테판 트롤러(Georg Stefan Troller)와 함께 20세기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일 비평가상, 골든 카메라상, 아돌프 그림메 상 등 주요 텔레비전 상을 모두 수상했다.

페히너는 1992년 8월 7일 함부르크에서 별세했으며, 브레멘-슈바흐하우젠의 리젠베르크 묘지에 안장됐다. 거의 20년간 NDR은 그의 직업적, 예술적 작업의 보금자리였다. 서거 30주기를 맞아 NDR은 『코미디언 하모니스트 - 여섯 개의 이력서』, 『클라라 하이데브레크에 대한 추도사』 등 그의 주요 다큐멘터리 여러 편과 1989년작 다큐멘터리 『에버하르트 페히너 - 유일하게 평범한 것들의 연대기 작가』를 포함해 8월 3일, 4일, 8일과 미디어 라이브러리를 통해 방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했다.

에버하르트 페히너 회고전 - 상영작 및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