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기 조종사 스타니스와프 스칼스키 (사진: 퍼블릭 도메인)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적인 폴란드 에이스
스타니스와프 스칼스키(Stanisław Skalski)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대표하는 전투기 에이스이자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의 참전 용사입니다. 그는 비르투티 밀리타리(Virtuti Militari) 전쟁 훈장 금십자장과 은십자장을 비롯해 수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과 교육
스칼스키는 1915년 11월 27일 오데사 인근 코딤(Kodym)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폴란드가 독립을 회복한 후 가족은 폴란드로 이주해 두브노(Dubno)에 정착했습니다. 193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바르샤바 공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이후 바르샤바 정치과학학교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열정은 하늘을 나는 일, 즉 항공이었습니다.
그는 활공 비행 과정과 군사 훈련을 마쳤고, 잠브루프(Zambrów) 보병 예비 장교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1936년에는 데블린(Dęblin) 항공 사관학교에 진학했으며, 1938년 상급 조종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9월 전역과 영국 본토 항공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스칼스키는 토룬(Toruń)의 제142 전투비행대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939년 9월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전과를 올린 폴란드 조종사가 되었으며, 연합군 최초의 전투기 에이스로 기록되었습니다. 9월 17일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한 뒤, 그는 루마니아를 경유해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영국군 항공기 훈련을 마친 후 왕립공군(RAF) 제501 전투비행대 소속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 참전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스칼스키 서커스'
1941년에는 제306 비행대로 전속되어 유럽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했고, 이후 폴란드 공군 내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제316 비행대 대대장 등을 맡았습니다. 1943년 초에는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폴란드 전투 비행단(Polish Fighting Team)에 합류했습니다. 이 부대는 놀라운 전과 덕분에 '스칼스키 서커스(Circus of Skalski)'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투 부대로 평가받았습니다.
귀국과 억울한 옥살이
전쟁이 끝난 후 영국 측은 스칼스키에게 영국에 남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강사로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1947년 비수와강으로 돌아와 폴란드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 그는 영국을 위한 간첩 행위라는 허위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바르샤바 라코비에츠카 거리에 있던 공공안보부 구치소에 수년간 감금당하며 고문을 당했습니다. 1950년 4월 7일에는 이른바 '화장실 재판'이라 불리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년간 사형수 대기실에서 지냈습니다. 1951년, 어머니의 탄원에 따라 대통령 볼레스와프 비에루트(Bolesław Bierut)가 사면권을 행사하여 그의 형은 종신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명예 회복과 말년
1956년 4월 11일, 최고군사법원은 그의 형을 무효로 선언하고 석방과 함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1957년 그는 소령 계급으로 군에 복귀했으며, 1972년 자진하여 예비역으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 동맹(ZBOWiD)과 투쟁과 순교의 기억 보호 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는 2004년 11월 12일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회고록 『폴란드 상공의 검은 십자가』
그의 9월 전역 회고록 『폴란드 상공의 검은 십자가(Black Crosses over Poland)』는 처음에 잡지 「디렉션즈(Directions)」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으며, 1957년 국방부 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